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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ZMORY MAGAZINE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음반처럼 찍어 냈다

1993년 말, 소니가 게임 개발자들 앞에 내놓은 초기 시제품은 책상 위 복사기만 했다. 이듬해 나온 플레이스테이션은 입체 화면과 함께, 게임을 만들고 매장에 다시 채우는 방식까지 바꾸려 했다. 음반 회사와 손잡은 소니가 개발자와 퍼블리셔, 그리고 손님을 불러 모은 이야기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음반처럼 찍어 냈다

복사기만 한 시제품으로 시작한 설득

일본 초기형 SCPH-1000 본체와 기본 컨트롤러
일본에서 처음 나온 초기형 SCPH-1000 본체와 기본 컨트롤러.

Evan-Amos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 Evan-Amos · Public domain

1993년 12월, 소니의 필 해리슨은 유럽 게임 개발자들을 사무실로 불러 모았다. 그가 훗날 『에지』 인터뷰에서 떠올린 초기 시제품은 책상 위 복사기만 한 회색 금속 상자였다. 안에서는 팬 두 개가 돌며 열을 식혔다. 한 개발자에게는 화면 속 시연이 다른 고성능 컴퓨터가 아닌 바로 이 상자에서 돌아간다는 것까지 직접 보여 줘야 했다. 게임기를 매장에 내놓기 전에 소니는 이 방에 모인 사람들부터 납득시켜야 했다.

소니가 보여 주려던 것은 입체로 만든 물체가 손의 조작에 맞춰 움직이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설득해야 할 상대는 둘이었다.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는 작업 도구를 살폈고, 게임을 찍어 파는 퍼블리셔는 생산비와 유통 조건을 따졌다.

지금은 초대 플레이스테이션을 1억 대 넘게 보급된 게임기로 기억한다. 그러나 출시 전 소니 앞에 놓인 질문은 훨씬 작고 구체적이었다. 이 기계가 정말 돌아가는지, 여기에 쓸 게임을 제때 완성할 수 있는지였다.

닌텐도와 갈라서고 음반 회사와 손잡다

시간을 조금 되돌리면, 출발점에는 닌텐도와의 공동개발이 있었다. 슈퍼패미컴 계열에 CD-ROM을 붙이려던 계획은 결국 소니 혼자만의 게임기로 방향을 틀었다. 컴퓨터역사박물관도 플레이스테이션의 기원을 이 협업에서 찾는다. 두 회사의 결별은 흔히 감정 문제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에지』가 정리한 배경에는 계약과 라이선스 권한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

소니 공식 역사에 따르면 기술 쪽을 맡은 구타라기 겐은 공동개발이 멈춘 뒤에도 독자적인 3차원 그래픽 방식을 밀고 나갔다. 옛 게임과의 호환을 앞세우는 대신, 새 하드웨어와 거기에 게임을 대 줄 회사들을 한꺼번에 마련해야 하는 길이었다.

1993년 11월 16일 세워진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에는 전자회사 소니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재팬이 함께 돈을 댔다. 회로와 본체를 만드는 회사에 음반을 찍고 팔아 본 회사가 붙은 셈이다. 소니가 광디스크를 고르고 바깥 창작자에게 문을 연 까닭도 이 조합에서 짐작할 만하다. 구타라기의 기술 구상만큼이나 마루야마 시게오 등 음악 사업 쪽 사람들이 들어온 조직도 제품의 중요한 일부였다.

적게 찍고 빨리 다시 찍는 CD

카트리지는 전자부품을 넣은 상품이지만 CD는 레이저로 읽는 광디스크다. 소니가 눈여겨본 차이는 담을 수 있는 내용과 찍어 내는 방식, 둘 다였다. 소니 공식 역사는 이미 있던 음반 생산·물류 체계 덕분에 적은 수량의 게임도 빠르게 공급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소매점에 직접 물건을 대는 체계도 함께 갖췄다. CD를 고르자 본체 속 부품과 함께 매장에 다음 물량이 도착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게임이 얼마나 팔릴지는 처음부터 알기 어렵다. 다시 찍는 데 오래 걸리면 퍼블리셔는 많이 주문했다가 재고를 떠안거나, 적게 주문했다가 손님이 찾을 때 팔 물건이 없다. 새 작품을 내는 회사에는 조금씩 나눠 찍고 반응을 보며 채워 넣을 수 있는 쪽이 반갑다. CD 한 장의 재료비로 게임값이 정해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주문에 따르는 위험을 조절할 여지는 커진다.

필 해리슨은 이 기계가 개발자에게는 창작할 만한 기계이면서 퍼블리셔에게는 사업할 만한 기계여야 했다고 회고했다. 소니는 CD라는 매체를 바로 그 두 조건에 맞춰 묶었다. 게임을 대는 회사에는 새 기계에 투자할 이유가 생겼고, 사는 사람 앞에는 새 게임이 계속 놓였다.

2MB 메모리에 세계를 넣는 법

SCPH-1000 메인보드 윗면
초기형 SCPH-1000의 메인보드 윗면.

Evan-Amos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 Evan-Amos · Public domain

다만 디스크가 크다고 화면까지 좋아지지는 않았다. 실시간 3D 게임은 플레이어가 움직일 때마다 화면에 보이는 물체와 시점을 새로 계산한다. 미리 만들어 둔 동영상을 틀어 주는 일과는 다르다. CD에 장면을 아무리 많이 담아도 지금 화면을 그리는 힘은 늘지 않는다. 저장 용량과 주메모리, 그래픽 처리량은 저마다 다른 한계였다. 초대 플레이스테이션은 디스크는 커도 작업 공간은 작은 기계였다.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었다. 실제 기계를 분석해 동작을 정리한 비공식 기술문서 PSX-SPX는 면 위에 표면 그림(텍스처)을 펼쳐 입히는 계산 방식의 한계를 설명한다. 비스듬한 면의 그림이 늘어나거나 일그러져 보이는 그 시절 화면은 오늘의 매끈한 3D와 사뭇 다르다. 개발자는 한 화면에 무엇을 얼마나 보여 줄지 골라야 했다.

『크래시 밴디쿳』을 만든 앤디 개빈은 2MB 주메모리에 게임 세계를 넣으려고 한 일을 직접 글로 남겼다. 그가 몸담은 너티 독은 카메라가 다닐 길을 정해 두었고 어느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미리 계산했다. 캐릭터에는 세밀한 표면 그림을 입히는 대신 음영을 넣은 다각형을 적극적으로 썼다. 기계의 부담을 덜면서 만화 같은 모습까지 얻는 방법이었다. 크래시가 달리는 길이 굽이지고 앞이 자주 가려지는 것도 그저 꾸밈만은 아니었다.

첫날 매장에는 『릿지 레이서』가 있었다

일본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이 나온 날은 1994년 12월 3일, 가격은 3만 9,800엔이었다. 남코의 『릿지 레이서』도 그날 함께 나왔다. 도로를 달리고 코너를 도는 레이싱은 입체 공간이 손의 조작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 알맞은 소재였다. 개발자들 앞에서 돌던 시연 속 물체가 이제 손님이 직접 모는 경주차로 바뀌었다.

오늘 초대 플레이스테이션을 떠올리며 함께 꼽는 명작들이 모두 첫날부터 매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반다이남코의 공식 작품 연혁에 따르면 『철권』 오락실판은 1994년 12월, 플레이스테이션판은 1995년 3월에 나왔다. 『파이널 판타지 VII』는 스퀘어 에닉스가 밝히듯 1997년 작품이다.

소니 월드와이드 스튜디오 회장을 지낸 숀 레이든은 20주년을 맞아 플레이스테이션 블로그에 회고를 남겼다. 일본 출시 뒤 이듬해까지 『릿지 레이서』를 붙들고 있었고, 북미 출시 무렵에는 『철권』과 『투신전』을 오갔다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기억이지만 초기 게임 목록이 시간이 흐르며 달라진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본체를 일찍 산 사람은 기다리던 작품이 하나씩 늘어 가는 것을 지켜봤다. 늦게 산 사람은 처음부터 더 많은 게임 가운데서 골랐다.

스틱 없는 패드와 따로 꽂는 메모리 카드

아날로그 스틱이 없는 초기 컨트롤러
아날로그 스틱 없이 방향키와 도형 버튼으로 다루던 초기 컨트롤러.

Evan-Amos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 Evan-Amos · Public domain

플레이스테이션용 메모리 카드
PSone 로고가 붙은 플레이스테이션용 메모리 카드.

Binhow2010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Binhow2010 · CC BY-SA 3.0

첫날 본체를 산 사람이 손에 쥔 패드도 오늘날의 것과 달랐다. 초기 컨트롤러에는 지금은 당연한 아날로그 스틱 두 개가 없었다. 방향키와 네 개의 도형 버튼, 어깨 버튼으로 게임을 했다. 아날로그 입력과 진동을 더한 듀얼쇼크는 같은 세대 안에서 나중에 나왔다. 제품이 오래 팔리는 동안 손에 쥐는 물건도 바뀌었다.

패드 말고도 챙길 물건이 하나 더 있었다. 게임을 어디까지 했는지는 디스크에 남지 않았다. 진행 상황은 본체 앞면에 꽂는 작은 메모리 카드에 저장했다. 소니의 본체 설명서는 카드 쓰는 법과 저장 데이터를 복사하고 지우는 법을 따로 안내한다. 게임을 읽는 디스크와 기록을 쓰는 카드가 따로였다.

그래서 게임을 켜고 끌 때마다 카드를 챙겨야 했다. 어느 카드에 어떤 게임이 들어 있는지 기억해 두고, 자리가 모자라면 무엇을 지우거나 옮길지도 정했다. 계정에 알아서 저장되는 요즘 눈으로 보면 번거롭지만 그 시절 플레이 기록은 손에 쥐는 작은 카드 한 장에 담겨 있었다.

미국은 299달러, 유럽은 『와이프아웃』

해외 출시는 이듬해 가을이었다. 북미 발매일은 1995년 9월 9일, 유럽은 같은 달 29일이었다. 일본의 첫 겨울부터 해외 매장의 첫 가을까지, 개발과 공급을 더 다질 시간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299달러라는 가격이 발표의 핵심이 됐다. 『에지』의 회고 기사는 게임 전시회 E3 무대에 오른 스티브 레이스가 그 숫자를 내놓던 장면을 전한다. 긴 기술 설명을 듣지 않고도 사람들은 그 숫자 하나로 살지 말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유럽 출시를 이야기할 때는 『와이프아웃』을 빼놓기 어렵다. 소니의 유럽 쪽 공식 회고는 『릿지 레이서』와 함께 이 게임을 출시 당시 작품으로 꼽는다. 미래의 탈것, 트랙을 따라 흐르는 시야, 댄스 음악이 한 게임에 들어 있었다. 일본에서 이 기계의 입체 화면은 익숙한 오락실 게임을 집으로 옮겨 왔다. 유럽에서는 같은 입체 화면이 새로운 음악과 시각 디자인을 한데 묶었다.

이 게임이 나오기까지는 곡절이 있었다. 『와이프아웃』 디자이너 닉 버컴은 실시간 3D 게임을 만드는 도중에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말했다. 개발 도구가 있고 본체가 강력해도 좋은 게임을 일정 안에 완성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새 화면을 얻는 대가로 팀은 일하는 방식을 다시 배워야 했다.

한국에서는 유통사가 먼저, 소니 법인은 나중에

한국에 언제 처음 들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1998년 1월 30일 전자신문 기사에는 이미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한다. 카마 엔터테인먼트가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 게임기, 게임 타이틀을 바탕으로 국내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기반을 다졌다는 보도였다. 적어도 그 전부터 국내 업체가 이 게임기를 다루고 있었다는 뜻이다.

소니가 직접 나선 것은 그 뒤다. 2002년 1월 공식 보도자료에서 2001년 12월 한국 법인 SCEK를 세웠다고 밝혔다. 이어서 2002년 2월 22일부터 PS2 본체와 플레이스테이션·PS2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담긴 본체는 PS2뿐이었고, 초대 플레이스테이션은 소프트웨어로만 이름을 올렸다. 한국 게이머가 기억하는 첫 플레이스테이션이 소니 한국 법인의 연혁보다 앞설 수 있는 까닭이다.

작은 PS one까지 합쳐 1억 대

2000년에는 몸집을 줄인 PS one이 나왔다. 이름은 닮았지만 1994년 회색 본체와 생김새가 다른, 같은 세대 안에서 다시 설계한 모델이다. 소니 연혁을 보면 2004년 5월 PS one까지 더한 플레이스테이션 출하량이 1억 대를 넘어섰다. 소니가 공개한 초대 플레이스테이션 하드웨어 누적 출하량은 2012년 3월 31일 기준 1억 240만 대가 넘는다.

그 사이 플레이스테이션은 새 3D 게임을 보여 주던 낯선 본체에서 이미 쌓인 작품 가운데 무엇을 할지 고르는 기계가 됐다. 게임을 만드는 회사와 다시 찍어 대는 공급 체계, 새로 들어오는 손님이 서로를 움직였다. 물론 게임하는 사람이 그런 구조까지 떠올릴 일은 없었다. 디스크를 넣고, 패드를 잡고, 저장할 카드를 고르면 그만이었다. 그 짧은 동작 뒤에는 좁은 메모리와 씨름한 개발자들과, 음반 생산망을 거쳐 매장에 온 디스크가 있었다.

다섯 줄로 남기는 플레이스테이션

  • 닌텐도와의 공동개발이 멈춘 뒤 소니는 독자적인 3D 게임기와 게임을 대 줄 회사들을 함께 마련했다.

  • CD-ROM은 게임을 담는 양과 함께 적은 수량을 빨리 다시 찍는 생산·재주문 방식까지 바꿨다.

  • 일본 출시일 1994년 12월 3일에는 『릿지 레이서』가 함께 나왔고 『철권』 PS판은 1995년 3월에 합류했다.

  • 스틱 없는 초기 패드 다음에 듀얼쇼크가, 1994년 회색 본체 다음에 작은 PS one이 같은 세대 안에서 나왔다.

  • 한국에서는 1998년 초 기사에 카마 엔터테인먼트가 유통사로 나오고 소니 한국 법인의 공급은 2002년 2월 PS2와 함께 시작됐다.

회색 본체가 오래 기억에 남은 데에는 화면 속 입체만큼, 다음 게임을 빨리 매장에 채워 준 CD의 몫도 있었다. — 기즈모리 편집부

초대 플레이스테이션은 닌텐도와의 공동개발이 멈춘 뒤 소니가 음반 회사와 함께 세운 회사에서 나왔다. 소니는 CD를 골라 음반 생산·물류 체계로 적은 수량의 게임도 빠르게 공급했고 개발자와 퍼블리셔 모두에게 이 기계에 걸 이유를 주려 했다. 『크래시 밴디쿳』 팀은 2MB 주메모리에 맞춰 카메라 길을 정하고 보이는 것을 미리 계산했다. 1994년 12월 3일 『릿지 레이서』와 함께 시작한 게임 목록은 해가 갈수록 불어났다. 작은 PS one까지 합친 출하는 2004년 5월 1억 대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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