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D-50, 배터리는 따로 팔던 첫 휴대용 CD
소니는 CD 케이스 네 장을 포갠 크기에 맞춰 D-50을 만들고 적자를 각오해 값을 낮췄다. 배터리는 따로 붙여야 했고 뛰면서 들을 수도 없었지만 CD를 오디오 선반 밖으로 가져가는 첫걸음이었다.
글렌 벤슨은 CD를 한 장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플레이어부터 샀다. 1985년 11월 28일,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의 딕슨스에서 소니 D-50에 낸 돈은 279파운드 99펜스였다. 그달 월급의 약 70%를 검은 정사각형 기계에 쓴 셈이다.
월급의 70%로 산 CD 플레이어
음반은 다음 날 해러즈에서 골랐다. 첫 CD 두 장은 울트라복스의 'Quartet'과 홀스트의 '행성'이었다. 신시사이저 팝과 관현악은 새 음악 매체의 소리를 들려줄 때 자주 앞세우던 음악이기도 했다.
벤슨은 30년 뒤인 2015년 이 D-50을 런던 V&A에 기증했다. 소장품에는 AC 전원부가 딸려 있지만 원래의 배터리 팩은 빠져 있다. 세계 최초의 휴대용 CD 플레이어였어도 배터리까지 본체에 넣지는 못했다. 따로 전원을 챙겨야 한다는 불편은 처음부터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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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고 드물었던 CD
1982년 10월 1일에 나온 소니 CDP-101의 값은 168,000엔이었다. 훗날 D-50 가격인 49,800엔의 3.4배다. 같은 날 CBS소니는 세계 최초의 CD 음반 50종을 내놓았다. 1호는 빌리 조엘의 '52번가'였고 그해 말까지 100여 종이 나왔다. 음악과 재생 기기는 갖춰졌지만 둘을 함께 사기에는 돈이 많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1983년 3월부터 CD 시장이 열렸다. 사운드 앤드 비전이 전한 소니 대변인 마크 파이너의 설명에 따르면 북미의 첫해 CD 플레이어 판매량은 모든 브랜드를 합쳐 3만 5천 대였다. D-50이 나오기 1년 반 넘게 앞서 판매를 시작했지만 시장은 아직 작았다.
소니의 회사 공식 역사에 따르면 1984년 말 CD 생산량은 아날로그 레코드의 10분의 1이었다. CD는 아직 소수의 취미였다. 음질은 이미 충분했으니 남은 문제는 값과 크기였다. 오디오를 모아 놓은 선반 밖에서도 음악을 들을 방법이 필요했다.
나무 모형으로 정한 크기
제너럴오디오 사업부장 오소네 고조가 개발팀에 내민 것은 정사각형 나무 모형이었다. 한 변은 13.4센티미터, 두께는 약 4센티미터였다. 소니는 이를 'CD 케이스 네 장을 포갠 크기'라고 설명한다. 오소네가 서명한 모형 사진에는 1983년이라는 연도가 붙어 있다. 완성품이 나오기 1년 넘게 전에 크기부터 정해 놓은 것이다.
오소네의 주문은 단호했다. 「中にバッタを入れようがセミを入れようが構わない。とにかく音を出してくれ」. 안에 메뚜기를 넣든 매미를 넣든 상관없으니 어쨌든 소리를 내 달라는 말이다. 개발팀은 그 크기를 지키면서 부품을 넣을 방법까지 찾아야 했다.
오소네는 사람들이 기꺼이 쓸 만한 크기를 먼저 정하라고 했다. 가진 기술과 부품에 맞춰 상자를 만드는 순서와는 반대였다. 기술자가 만들기 편한 크기보다 사용하는 사람이 원하는 크기가 개발의 기준이었다.
적자를 각오한 49,800엔
가격은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가 정했다. 「5万円を切る価格でいこう。最初は赤字でも、きっと後で利益が出るはずだ」. 처음에는 손해를 보더라도 나중에는 이익이 날 테니 5만 엔 아래로 가자는 뜻이었다. 그렇게 정한 값이 49,800엔이다. 2년 전 CDP-101 가격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그보다 앞선 1983년 가을에는 야마하 CD-X1이 99,800엔으로 나와 10만 엔 아래로 내려갔다고 전해진다. D-50은 여기서 다시 절반 수준으로 값을 낮추고 크기까지 줄였다. 소니의 회고에 따르면 보급을 위해 원가보다 싸게 팔면서 생산 공정을 단순하게 만들고 원가를 낮추는 일을 계속했다.
여기에 늘 따라붙는 숫자가 있다. 처음 원가가 판매가의 200%였고 잘 팔린 덕에 1년 반 만에 손해를 메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숫자는 팬 블로그와 정리 글, 영어 위키백과에서만 되풀이될 뿐 소니의 회사 공식 역사에는 원가율도 회수 기간도 나오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모리타의 말대로 적자를 각오하고 정한 가격이었다는 점뿐이다.
따로 챙겨야 했던 배터리
D-50의 본체 무게는 590그램이었다. V&A는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장 저렴한 CD 플레이어'라고 소개한다. 다만 작은 것은 본체뿐이었다. 전원까지 모두 갖춰야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밖에서 쓰려면 별매 EBP-9LC 배터리 케이스가 필요했다. 여기에 C형 건전지 여섯 개나 소니 KR-C-F-2 니카드 충전지 여섯 개를 넣고 본체 밑에 붙였다. 차 안에서 쓸 때는 12볼트 코드 DCC-120을 따로 사야 했다. 휴대용이라는 이름과 달리 본체만 들고 나가서는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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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쓰는 AC 어댑터도 작지는 않았다. 1986년에 D-50을 산 일본의 한 독자는 어댑터를 뒷면에 붙이면 크기가 4할쯤 늘었다고 회상했다. 본체를 작게 만든 이점이 전원을 붙이는 순간 그만큼 줄었다.
흔들림에도 약했다. 스티브 구텐버그는 2012년 사운드 앤드 비전에서 'the D-5 didn't have a buffer to prevent skipping, so you could walk with it—gently—but jogging would have been impossible'이라고 썼다. 음악을 미리 저장해 끊김을 막는 버퍼가 없어 살살 걸을 수는 있어도 조깅은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디스크를 읽는 레이저 장치가 흔들리면 음악도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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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크를 읽는 부품은 KSS-110A 광학 픽업이었다. 디지털 신호를 소리로 바꾸는 데는 CX20133 16비트 DAC을 썼다. 본체 두께는 약 4센티미터였고 재질은 V&A 기록에 따르면 알루미늄과 ABS 플라스틱이었다.
검게 반짝이는 표면에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소니가 공식적으로 밝힌 유래는 아니지만 여성용 콤팩트 케이스를 칠하던 방법을 가져왔고 'CD Compact Player'라는 이름도 거기서 왔다는 일화다. 옆면의 가는 홈을 1982년 워크맨 II를 본뜬 것으로 보는 평론도 있다. 처음에는 검정만 팔았으며 나중에 '스포티 레드'라는 빨강이 더해졌다.
초대 D-5/D-50을 직접 다루며 요즘 CD 플레이어와의 차이를 보여주는 영상.
본체와 상표 서류의 다른 이름
D-50은 1984년 11월에 출시됐다. CDP-101이 나온 지 꼭 2년째 되는 달이었다. V&A가 밝힌 공식 이름은 'CD 콤팩트 플레이어'다. 상판에도 디스크맨 대신 이 이름이 붙어 있었다.
1986년에 이 기계를 산 일본 독자도 당시에는 디스크맨이나 CD 워크맨이라는 호칭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지금 익숙한 이름으로 제품을 부르지 않던 때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미국 상표 서류에는 이미 'DISCMAN'이 등장한다. 소니 아메리카가 상표를 신청한 날은 1984년 11월 29일이다. 서류에 쓴 최초 사용일과 상업적 최초 사용일은 모두 1984년 11월 5일이었다. 등록은 이듬해 7월 2일에 이뤄졌다.
디스크맨 이름이 1985년 말 D-50 Mk II나 후속기 D-7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상표 서류의 날짜는 그보다 1년가량 빠르다. 다만 상표의 상업적 사용에는 광고와 카탈로그, 포장도 들어간다. 이 날짜만으로 초대기 상판에 디스크맨이 새겨졌다고 볼 수는 없다. 본체에는 CD 콤팩트 플레이어, 서류에는 디스크맨이라는 이름을 쓰던 시기였다.
일본에서는 내려가고 영국에서는 그대로인 값
소니는 D-50을 '폭발적인 히트(爆発的なヒット)'라고 회고하지만 판매 대수는 밝히지 않았다. 대신 CD 생산량을 든다. 1986년에는 아날로그 레코드를 앞질렀다. 이후 1988년 전후 1억 장을 넘었고 1992년에는 3억 장을 넘어섰다. D-50이 나온 뒤 CD 시장은 커졌지만 그 성장을 이 제품 하나의 성과로 돌릴 수는 없다.
1986년 1월, 고교 입시를 앞둔 일본 학생은 할인 매장에서 D-50을 39,800엔에 샀다. 정가보다 20% 싼 값이었다. 그는 스피커와 앰프가 없는 D-50을 라디오카세트에 연결해 하워드 존스와 왬!을 들었다. 약 30년 뒤에도 뚜껑이 뻑뻑한 것 말고는 잘 작동한다고 전했다.
영국에서는 1년이 지나도 값이 거의 그대로였다. 1984년 12월 예정가는 279파운드 95펜스였고 벤슨이 1985년 11월에 낸 돈은 279파운드 99펜스였다. 차이는 고작 4펜스다. 월급의 70%가 드는 물건이었지만 기다린다고 값이 내려가지는 않았다.
미국에서는 D-5라는 모델명으로 팔렸다. 가격은 자료에 따라 300달러에서 350달러로 전해진다. 소니는 CBS·RCA·워너·폴리그램과 함께 MTV 봄방학 행사에서 이 기계를 젊은 층에 알렸다. 뛰면서는 들을 수 없는 기계였지만 광고에서는 활동적인 젊은이들의 물건이었다.
74분짜리 CD를 둘러싼 이야기
CD가 74분인 까닭을 카라얀에게서 찾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을 한 장에 담아야 한다는 그의 요구 때문에 재생시간을 정했다는 것이다. D-50이 읽는 12센티미터 디스크의 탄생을 음악 한 곡으로 설명하는 이야기다.
CD 규격을 만든 당사자인 케스 스하우하머르 임크는 오래전부터 이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해 왔다. 필립스 소속으로 소니와 함께 일한 그는 CD에 정보를 담는 EFM 방식과 읽기 오류를 바로잡는 CIRC를 고안했다. 그의 회고에서 중요한 것은 공장이었다. 필립스 자회사 폴리그램은 독일 하노버에 115밀리미터 디스크 생산 시설을 갖췄지만 소니에는 그런 공장이 없었다.
임크에 따르면 소니의 오가 노리오는 115밀리미터를 표준으로 삼으면 필립스가 유리해진다는 점을 알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상 결과는 소니가 제안한 12센티미터·16비트·74분이었다. 필립스가 내놓은 안은 11.5센티미터·14비트·60분이었다. 오가는 CD 규격을 놓고 협상했고 오소네 고조는 그 CD를 재생할 기기의 크기를 정했다.
결정 순서도 살펴볼 만하다. 12센티미터 지름은 1979년 12월 제3차 기술회의에서 채택됐다. 재생시간을 좌우하는 EFM은 그보다 반년 뒤인 1980년 6월에야 확정됐다. 재생시간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지름을 맞췄다는 이야기와는 순서가 반대다. 게다가 EFM은 밀도를 30% 높여 재생시간을 97분까지 늘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정한 12센티미터·74분을 흔들지 않으려고 밀도를 도로 30% 낮췄다. 97분 안은 검토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베토벤이 논의에서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준으로 제시한 연주는 1951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실황이었다. 임크는 그 길이를 74분 33초라고 썼다. 반면 카라얀이 베를린필을 지휘한 1977년 DG 녹음은 1시간 6분이었다. 카라얀의 연주를 담는 데 74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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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크도 가장 긴 연주인 74분을 담자는 요구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마지막 결정은 규격 전문가들 바깥에서 내려졌다고 평가했다. 팩트체크 사이트 스놉스는 베토벤 일화를 여전히 '판정 불가'로 분류한다. 임크가 남긴 말은 이렇다. 'Everyday practice is less romantic than the pen of a public relations guru.' 실제 일은 홍보 담당자의 글만큼 낭만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더 얇게, 덜 끊기게
전원 문제는 1985년 후속작 D-50 Mk II에서 손봤다고 전해진다. BP-200 충전 배터리 팩을 바닥에 바짝 붙일 수 있도록 내부를 다시 설계했다는 것이다. 디스크맨 이름이 이 모델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도 퍼졌다. 상표 서류에서는 이미 1년 전부터 쓰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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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D-100은 D-50의 절반도 안 되는 두께로 나왔다. 1988년 D-88은 8센티미터 미니 CD만 한 크기로 줄었지만 렌즈를 움직여 12센티미터 디스크도 읽었다. 1989년 D-90에는 워크맨 WM-501의 저음을 키우는 회로를 옮겨 넣고 '메가베이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름은 이후 소니 휴대 음향기기에 오래 남았다.
걸을 때 음악이 끊기는 문제는 늦게 풀렸다. D-50이 나온 지 여덟 해 뒤인 1992년, D-515에 처음 들어간 ESP가 메모리를 써서 끊김을 줄였다. 1995년 D-777은 껌형 배터리로 두께를 줄이면서 단단한 저음을 냈다. 1999년 D-E01은 마그네슘 외장에 디스크를 틈으로 밀어 넣는 방식을 썼다. 1998 회계연도 말까지 CD 워크맨 계열의 누적 출하는 4,600만 대에 달했다.
소니는 다른 개인용 오디오와 이름을 맞추려고 디스크맨을 CD 워크맨으로 바꿨다. 일본 제품부터 1997년 10월과 1998년 3월 사이에 바꾸기 시작했고 모든 제품의 이름 변경은 2000년에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상표 등록을 유지할 서류를 내지 않아 'POCKET DISCMAN'은 1995년 9월, 'DISCMAN'은 2006년 4월에 등록이 취소됐다.
디스크맨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기의 소니 광고.
D-50은 2014년 뉴욕현대미술관에, 2015년에는 V&A에 소장됐다. 30년 된 기기가 디자인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가 된 셈이다. V&A에 들어간 것은 벤슨이 월급의 70%를 주고 산 바로 그 물건이었다. 그때도 배터리 팩은 함께 들어가지 않았다.
한국에서 CD를 들었던 시절
1984년 한국에는 소니의 공식 유통망이 없어 D-50이 정식으로 수입될 길이 없었다. 한국 법인은 1990년 2월 소니인터내셔널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세워졌고 2000년에 소니코리아가 됐다.
당시 외제 기기를 구하던 곳으로는 세운상가가 있었다. 한국일보의 2016년 기사에 따르면 상인들은 '해외파견 기술자나 외국인 등을 통해 외제 중고품을 사들인 후 깨끗이 손질해서 되팔았다'. 이 기사가 1980년대 중반 중고생이 가장 갖고 싶어 한 물건으로 꼽은 것은 워크맨이었다. CD 플레이어나 디스크맨은 나오지 않는다.
D-50도 병행수입이나 구매대행, 중고품 거래로 소수가 들여왔으리라는 추정이 있다. 다만 이는 카세트 워크맨의 유통 사정에서 짐작한 이야기다. D-50이 실제로 어떤 길을 거쳐 들어왔는지, 서울에서 얼마에 팔렸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에서 휴대용 CD 플레이어가 흔해진 것은 그보다 뒤의 일이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1980년대 후반부터는 휴대용 CD플레이어가 보편화되어'라고 설명한다. 박물관에 있는 실물은 1990년대 아이와 XP-V514 여섯 점이다. 가로세로 12.5센티미터, 두께 2.6센티미터로 D-50보다 훨씬 얇고 10년 늦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아이와와 소니 외에 삼성·금성·동원전자도 CD 플레이어를 만들었다.
다섯 줄 요약
D-50은 CDP-101 발매 2주년인 1984년 11월, 49,800엔에 나온 세계 최초의 휴대용 CD 플레이어다.
오소네 고조는 한 변 13.4센티미터의 나무 모형을 내밀어 개발팀이 지켜야 할 크기를 정했다.
배터리 케이스나 AC 어댑터를 따로 써야 했고 음악 끊김을 막는 버퍼가 없어 조깅하며 들을 수 없었다.
'DISCMAN' 상표의 상업적 최초 사용일은 1984년 11월 5일로, Mk II·D-7 기원설보다 1년 빠르다.
CD의 74분은 베토벤 9번 일화보다 폴리그램 하노버 공장 사정과 12센티미터 결정 순서로 설명하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가지고 있는 기술에서 출발해 생각하지 말고, 모두가 기꺼이 쓸 크기를 절대 목표로 제시한다.” — 오소네 고조, D-50 개발 원칙
D-50은 590그램 본체에 전원을 따로 연결해야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들고 다닐 만큼 작아졌어도 흔들리면 소리가 끊겼다. 그래도 크기와 가격을 함께 낮춰 CD를 오디오 선반 밖에서 듣게 했다. 휴대용 CD 플레이어의 완성보다 시작을 보여주는 기기다. ★★★★☆ 8.7/10 · ICONIC 9.4 · DESIGN 8.8 · IMPACT 9.4 · USABILITY 6.5
참고 자료
- 80年の歴史 第2部第7章「音楽のデジタル化」第5話「音楽鑑賞を身近なものに-ポータブルCDプレーヤー」 (소니 공식 사사)
- USPTO TSDR — DISCMAN, Reg. No. 1345869 (Serial 73510979)
- USPTO TSDR — POCKET DISCMAN, Reg. No. 1527947 (Serial 73732659)
- D-50 compact disc compact player | V&A Explore The Collections
- Shannon, Beethoven, and the Compact Disc (Kees Schouhamer Immink)
- Did Beethoven's 9th Symphony Determine the Length of a CD?
- Sony D-5 Portable CD Player (Sound & Vision)
- わたしの思い出家電 ソニーのCDプレーヤー「D-50」 (Impress Watch)
- 시대 따라 떠오르는 '그때 그 물건' (한국일보, 2016-03-02)
- [WALKMAN의 모든것] 4부. 1990년대 음악과 함께 한 CD워크맨 전성시대 (소니코리아 공식 블로그)
- 소장유물소개 — 아이와(AIWA) CD플레이어 XP-V514 (서울생활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