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폰, 정전식 화면을 처음 달고 나온 전화
프라다폰의 앞면은 펜도 손톱도 받지 않고 손가락만 받았다. 그런데 그 유리를 만든 회사는 기록에 오래 빈칸으로 남았고, 화면 방식은 엉뚱하게 ‘감압식’으로 적혀 왔다. 만든 쪽의 이름은 2007년 실적발표에 이미 나와 있었다.
2007년 6월 15일,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AP 사진기자 폴 사쿠마가 어느 회사 본사에서 휴대폰 한 대를 찍었다. 사진 설명에 적힌 물건은 LG 프라다폰, 사무실 주인은 터치센서를 만드는 시냅틱스였다. AT&T도 버라이존도 들여놓지 않은 폰이 미국 부품 회사의 탁자에 놓여 있었다.
그 사진이 찍히기 다섯 달 전, 시냅틱스의 CEO 프랜시스 리는 분기 실적발표에서 그 폰의 이름을 직접 불렀다. “our ClearPad touch screen technology is being used in the new LG KE850 PRADA mobile phone.” 2007년 1월 25일이었다.
앞면이 통째로 검은 판인 이 폰의 화면은 손가락만 받았다. 그런데 그 화면이 어떤 방식이었는지는 15년 넘게 틀린 단어로 적혀 왔다. 먼저 만든 쪽이 먼저 기록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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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눌러 쓰던 시절
2006년의 휴대폰 화면은 눌러야 열렸다. 대부분 압력을 읽는 저항막, 그러니까 감압식이어서 정확히 찍으려면 손톱 끝이나 함께 들어 있는 플라스틱 펜이 필요했다. 화면을 직접 건드리는 폰이 없지는 않았다. 1992년 IBM 사이먼과 2000년 삼성 SCH-X730이 있었다. 다만 그 화면들도 손가락에 맞춰 만든 것은 아니었다.
LG에게 다른 길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당시 간판이던 초콜릿폰은 터치 조작 버튼이 이미 피부에 흐르는 전기를 읽는 방식이었다. PhoneArena 리뷰는 프라다폰 화면을 두고 “초콜릿폰의 터치 감응 버튼과 똑같이 피부에 흐르는 전기로 작동하며, 펜이든 포인터든 다른 것이 닿으면 반응하지 않는다”고 썼다. 키패드 자리의 원리를 화면 크기로 늘린 셈이다.
버튼을 지우려는 시도는 훨씬 오래됐다. LG전자 MC디자인연구소장 차강희는 2007년 2월 1일 아이뉴스24 인터뷰에서 “버튼을 없애기 위한 연구는 휴대폰 초창기부터 계속돼 왔습니다. 심미적 측면에서 12개의 숫자키가 미관을 해치는 영향은 제법 큽니다”라고 말했다. 쓰기 편해서가 아니라 보기 나빠서였다는 고백에 가깝다.
이름만 빌려주던 프라다가 설계에 나섰다
브랜드를 빌려주는 일이라면 프라다는 익숙했다. 런던 모바일폰뮤지엄의 기록에 따르면 프라다는 이미 만들어 둔 휴대폰에 이름만 붙이자는 제안을 여러 번 받았고, 새 제품을 처음부터 같이 설계하자고 한 제조사는 LG가 처음이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이 협업을 계기로 2007년 2월 14일에는 밀라노 본사를 한국 언론에 처음 열기도 했다. 홍보담당 프란체스코 카타니는 그 자리에서 “프라다 고객들도 프라다를 전부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제안이 한 번에 통한 것도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한국경영학회 계열 학술지에 실린 LG전자 사례연구에 따르면, LG가 처음 들고 간 안은 만들기 수월한 바 타입이었고 프라다가 이를 거절하자 풀터치스크린으로 다시 제안해 일이 빠르게 풀렸다. 논문은 1993년 미우미우 이후 정통 노선만 지켜 온 프라다가 새롭다는 이미지에서 뒤처졌다는 위기감도 배경으로 꼽는다.
프라다 회장 겸 CEO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는 LG 보도자료에서 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기존 제품에 브랜드를 붙이는 것이 아니다. 미우치아와 나는 LG와 함께 이 새 폰에 아주 강한 성격과 고유한 스타일을, 콘텐츠와 디자인 양쪽에서 부여하는 작업을 해 왔다.” LG는 함께 만든 범위를 화면 조작법과 벨소리, 메뉴 구성과 글자체, 이탈리아 장인 전통에서 따왔다는 가죽 케이스까지로 밝혔다. 값은 600유로부터였다.
그 유리를 댄 회사
시냅틱스는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의 터치센서 회사다. 앞서 본 1월 실적발표가 제품 이름까지 붙은 가장 이른 공급 기록이고, 프라다폰이 유럽 매장에 깔리기도 전이었다.
출시 뒤에도 같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테크크런치의 존 빅스는 2007년 3월 27일 “시냅틱스는 프라다폰 UI에서 작은 물고기를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화면 속 정전식 센서를 만든다”고 썼다. GSMArena 리뷰에도 컬러 테마를 고르면 나비와 물고기가 헤엄치는 대기화면이 나온다는 설명이 있다. 센서 회사 기사와 폰 리뷰가 같은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전식은 압력을 읽지 않는다. GSMArena 리뷰의 설명대로 손이 닿을 때 생기는 주파수 변화를 화면 모서리의 회로가 붙잡아 좌표를 계산한다. 먼지나 물기에 덜 흔들리고 화면도 맑은 대신, 스타일러스든 손톱이든 손가락이 아닌 것에는 좌표가 잡히지 않았다.
17년이 지나서는 진술서에서 같은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시냅틱스에서 터치스크린 개발을 이끈 밥 매키는 2024년 미국 특허심판원에서 2006년 자사가 ‘세계 최초의 올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인 LG 프라다’의 터치스크린을 댔다고 밝혔다. AP통신도 2007년 6월 기사에서 시냅틱스 기술이 LG 프라다에 들어가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도 빈칸은 오래갔다. 시냅틱스가 낸 2007 회계연도 연간 보고서(10-K)는 고객사로 LG전자를 올렸을 뿐 프라다라는 제품 이름을 쓰지 않았고, KE850에 들어간 컨트롤러 칩의 부품번호도 공개 자료에 없다. 그래서 유리를 만든 회사를 끝내 모른다는 문장이 길게 남았다. 한편 같은 AP 기사는 아이폰을 “한 번에 손가락 하나 이상을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휴대폰”으로 따로 묶었다. 정전식을 처음 단 것과 멀티터치는 애초에 다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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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만 받는 화면과 느린 카메라
크기는 99×54×12mm, 무게는 85g이었고 앞면 대부분을 3.0인치 240×400 화면이 차지했다. 물리 키패드는 없었다. PhoneArena는 이 폰을 아이폰(115×61×11.6mm, 135g)·삼성 F700·모토로라 레이저 V3와 나란히 놓고 “전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아이폰보다 훨씬 가볍고 부피도 작다… 접은 오리지널 레이저보다도 작다”고 적었다.
화면 속 그림은 마크로미디어 플래시로 그렸다. 흔히 아이콘을 없앤 화면으로 이야기되지만 당시 리뷰의 설명은 다르다. PhoneArena는 메인 메뉴가 “크고 둥글어 누르기 쉬운 아이콘”을 담은 4탭 구조였다고 전했다. 없앤 것이 아니라 크게 키워 개수를 줄인 쪽이다. GSMArena는 “플래시를 쓴다고 별도 OS가 있는 것은 아니며 프라다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손가락에 반응하는 화면에는 불편도 따라왔다. PhoneArena는 얇은 천이나 케이스 너머로도 화면이 눌린다며 주머니에 넣을 때는 잠그라고 당부했다. 슬래시기어의 크리스 데이비스는 손끝으로 사진을 끌어 옮기는 일조차 되지 않는다며 “LG 엔지니어들은 전통적인 폰 OS를 화면 버튼용으로 다시 코딩했을 뿐”이라고 썼다.
카메라는 장식에 가까울 만큼 느렸다. 200만 화소 슈나이더-크로이츠나흐 인증 렌즈가 최대 1600×1200을 찍었지만 한 장에 약 8초, 초점 잡는 데만 약 4초가 걸렸다. PhoneArena는 뒷면 카메라 모듈을 “이 폰에서 유일하게 못생긴 부분”이라 불렀다. 대신 상자에는 3.5mm 어댑터가 달린 헤드셋과 256MB microSD, 가죽 케이스가 층층이 들어 있었다. 케이스는 씌워도 위쪽 PRADA가 드러나도록 잘려 있었다.
정식 리뷰의 평가는 미지근했다. GSMArena는 “손에 아주 잘 잡히고 무게와 폼팩터가 좋은 사용 경험을 만든다”면서도 손가락만 받는 점과 조용한 벨소리 스피커를 나란히 짚었다. 테크다이제스트는 피아노 블랙 마감에 지문이 잘 묻고 뒷면 커버 버튼 자리의 도장이 쉽게 벗겨진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심사위원들은 후했다. 받은 상의 공식 이름은 ‘iF product design award 2007’, iF에 올라간 제목은 ‘PRADA phone by LG GUI (KE 850)’다. 상을 받은 대상이 폰 전체가 아니라 화면 속 인터페이스였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같은 해 레드닷 최고 등급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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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보다 먼저 매장에 오른 폰
이 폰이 처음 모습을 보인 때는 2006년 12월 중순이다. 엔가젯이 12월 15일 이름과 사진을 실으면서도 본문에는 “사양은 여전히 미스터리”라고 적었다. 알려진 것은 400×240 화면과 뒷면 카메라 정도였다. LG와 프라다의 첫 공동 발표는 12월 11일이나 12일자였고, 내년 초부터 판다는 예고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양과 값과 출시국이 붙은 공식 발표는 2007년 1월 18일이었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2월 말, 홍콩·대만·싱가포르가 3월 말이었다. 그날 GSMArena 기사에도 화면 해상도는 아직 모른다고 적혀 있었다. 3GSM 현장을 취재한 폰스쿱은 미국에서 직접 들여올 때의 체감가를 800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 봤다.
발표하고도 실물이 한참 나오지 않았다. 테크크런치는 2007년 3월 15일 언박싱 영상을 다루며 그전까지 이 폰이 발표만 하고 끝나는 제품, 이른바 베이퍼웨어라는 소문과 허풍 사이에 놓여 있었다고 썼다. 같은 달 세빗에서 실물을 만져 본 엔가젯의 션 쿠퍼는 마감은 최고급인데 촉감은 값싼 플라스틱 같다는 평을 남겼다. LG가 첫 출시국으로 영국을 고른 것은 소비자 직판 유통망이 세서 후발주자가 파고들기 좋았기 때문이라고 논문은 설명한다. 유럽에 내놓은 지 두 달 만에 약 10만 대가 나갔고, 영국 최대 휴대폰 판매점 폰즈포유에서는 4월부터 주간 판매 1위를 이어갔다. 아이폰이 미국 매장에 오른 날은 그해 6월 29일이다.
그리고 2007년 2월 12일, LG 모바일 핸드셋 R&D 센터장 곽우영의 말이 텔레콤스코리아를 통해 나왔다. “우리는 애플이, iF 디자인 어워드에 출품돼 2006년 9월 상을 받으며 디자인이 공개된 뒤 프라다폰을 베꼈다고 본다”는 것이었다. 훗날 GSMArena는 9월부터 1월 사이에 새 폰을 설계해 낼 수는 없다며 일축했고, LG는 끝내 소송하지 않았다.
개인 채널에 남은 KE850 핸즈온 영상.
TV 광고를 걸지 않고 팔았다
사례연구 논문은 파는 방식을 ‘3무 전략’으로 요약한다. 신제품 발표회를 열지 않고 출시 시기만 알렸다. TV광고 대신 신문과 고급잡지에만 걸었고 값도 깎지 않았다. 그렇게 지킨 값이 유럽에서 599~600유로, 뉴질랜드 정가로 1,299 뉴질랜드달러였다. 3G도 Wi-Fi도 없는 휴대폰에 붙은 값이다. TV를 피한 것은 명품 브랜드의 방식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LG전자 관계자는 훗날 설명했다.
모델 기용에도 규칙이 있었다. 2007년 오리지널부터 2012년 3.0까지 LG는 국내 대중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한 번도 쓰지 않고 패션계 톱모델만 세웠다. 2007년 샤샤 피보바로바, 2008년 린다 에반젤리스타, 2012년 다리아 워보이와 배우 에드워드 노튼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매장 진열까지 매뉴얼로 묶였다. 제품 이름은 ‘The Prada Phone by LG’로만 쓰고, 가격표는 본체의 10분의 1 크기를 넘지 못했다.
판매는 나쁘지 않았다. LG전자는 2008년 9월 24일 유럽에 내놓은 지 18개월 만에 누적 100만 대를 넘었다고 발표했다. 안승권 MC사업본부장은 “프라다폰 판매 100만대 돌파는 ‘LG 휴대폰=프리미엄 휴대폰’이라는 이미지를 확립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영국 앤드류 왕자는 2007년 2월 바르셀로나 3GSM 부스에서 이 폰을 보고 5월 런던에서 다시 본 뒤 “엑설런트”라고 평했고, LG전자는 그의 이름을 새긴 프라다폰을 보냈다.
광고 아카이브 채널이 올려둔 프라다폰 광고. 원래 어디에 걸렸던 광고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에 못 갔다는 말의 뜻
이 폰은 끝내 미국에 정식으로 나오지 않았다. KE850의 무선 사양은 GSM/EDGE 트라이밴드 900/1800/1900MHz로, 미국 저대역인 850MHz가 빠져 있었다. 모바일가제트는 발표 당일부터 “지금 형태로는 미국에 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고 실제로 AT&T도 버라이존도 매대에 올리지 않았다. 미국에서 돌아다닌 물건은 대부분 병행수입품이었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아예 못 쓰는 물건은 아니었다. AT&T가 보관 중인 싱귤러용 LG C2000 설명서는 미국 GSM 대역을 850/1900MHz로 안내하고, PhoneArena의 KE850 리뷰도 미국에서는 1900MHz 지역에 한해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850MHz에 기대는 곳에서만 먹통이었다는 뜻이다. 슬래시기어는 미국에 못 온 이유를 “800MHz 대역 미지원”이라고 썼는데, 미국 저대역은 800이 아니라 850MHz다.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부터 숫자가 어긋나 있었다.
미국의 어떤 통신사도 취급하지 않았다는 말에도 예외가 있다. RCR Wireless는 2008년 2월 파산한 초고가 컨시어지형 가상통신사(MVNO) 보체를 다루며, 월 118~200달러짜리 서비스의 단말 목록에 “the Prada by LG Electronics Co.”가 있었다고 썼다. 2007년 5월에는 버라이존이 아이폰 대항마로 프라다폰을 준비한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는데, 모두 TheStreet 기사 한 건을 차례로 받아 쓴 것이었다. 버라이존 망은 통신 방식(CDMA)이 달라 별도 모델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정작 버라이존이 내놓은 것은 LG 보이저였고 프라다폰의 CDMA 버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럼 왜 못 갔을까. 오래 회자된 설명은 이렇다. AT&T는 TV광고가 필수라고 봤는데 프라다와 맺은 계약이 그것을 막았고, 버라이존은 단말 앞면에 자사 로고를 요구해 프라다 말고 다른 로고는 안 된다는 조항과 부딪혔다. 다만 근거는 국내 학술지 사례연구에 실린 익명 관계자 인터뷰 하나뿐이다. 같은 시기 미국 업계지와 통신사 자료에는 협상이나 결렬의 기록이 없다. 남는 것은 정식 출시가 없었다는 결과뿐이다.
두 번의 후속작, 그리고 마지막
LG는 이 협업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았다. 프라다 II(KF900)는 2008년 10월 발표돼 그해 연말에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500만 화소 슈나이더-크로이츠나흐 카메라, 밀어서 여는 쿼티 자판, 3G와 HSDPA, Wi-Fi, 앞면 카메라까지 1세대의 빈칸을 거의 다 메웠다. 손목에 차고 전화와 문자를 확인하는 블루투스 액세서리 ‘프라다 링크’도 함께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스마트워치와 비슷한 물건이다. 다만 1세대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 3G가 쏟아지던 해와 겹쳐, 레트로 매체 retromobe는 프라다 II가 그 틈에서 존재감을 잃었다고 평가한다.
세 번째이자 지금까지 알려진 마지막은 2011년 12월의 프라다폰 3.0(P940)이다. 4.3인치 800×480 화면에 1GHz 듀얼코어를 얹고 안드로이드 2.3 위에 프라다다운 흑백 화면을 씌웠다. 엔가젯의 맷 스미스는 “이 패션폰의 사양은 농담이 아니다 — 불행히도 작년 플래그십 사양에 프라다 정장을 입힌 것”이라고 썼다. 영국 무약정가는 출시 초 430~500파운드로 매체마다 엇갈렸는데, IntoMobile 보도로는 2012년 9월 12일 아스다가 같은 폰을 149파운드에 걸었다. 전자신문의 지적대로 오리지널과 2세대는 피처폰이라 앱을 설치하지 못했고 3.0에서야 앱 설치가 붙었다. 정전식 화면을 먼저 내놓고도 앱을 깔 수 있는 폰을 갖추기까지 5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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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짜리 폰에 펜이 딸려 왔다
국내판은 처음부터 다른 물건으로 기획됐다. LG전자는 2007년 4월 18일 한국형 프라다폰을 공개하고 이튿날 코엑스 한국정보통신대전에 전시했다. 모델명부터 해외판 KE850과 달리 LG-SB310과 LB3100이라는 국내 전용 번호였다. 앞면에는 통신사 로고도 제조사 로고도 없이 PRADA만 박혔다. 통신사 이름이 지워진 단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그때는 사건이었다.
가장 큰 차이는 몸통 밖으로 튀어나온 외장 안테나였다. 국내판에는 지상파DMB가 들어갔고 3인치 화면으로 DMB를 볼 때는 일반(4:3)과 와이드(16:9) 비율을 골라 쓸 수 있었다. 뉴스와이어 자료로는 국내판이 12.9mm·95g으로 해외판(12mm·85g)보다 두껍고 무거웠다. 블루투스가 빠지고 그 자리를 적외선 송수신이 채웠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국내판에는 펜도 들어갔다. 필기체를 알아보고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기능이 붙었고, 전자신문은 함께 주는 스타일러스 펜으로 화면에 직접 필기체를 적으면 자동으로 인식한다고 썼다. 스타일러스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모든 리뷰가 썼던 그 화면에 국내판은 펜을 넣어 판 것이다. 프라다 로고는 본체와 가죽 케이스, 이어폰, 그 펜에까지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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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은 88만원으로 당시 LG전자 휴대폰 가운데 가장 비쌌다. 4월 공개 때 보도는 100만원대에 육박하리라고 봤으니 최종가는 오히려 예상보다 낮았다. 서울신문은 DMB와 필기 인식이 더해져 한국형이 유럽 등지보다 10만여 원 비싸졌다고 전했다. 판매처는 SK텔레콤·LG텔레콤 대리점과 서울 청담동 프라다 매장이었다. 흔히 5월 7일 출시로 이야기되지만, 아이뉴스24 5월 15일자와 전자신문·서울신문 5월 16일자 기사는 모두 LG전자가 15일 밝혔고 이번 주부터 판다고 보도했다.
출시 전부터 청담동·압구정동 대리점에 수백 대 규모의 비공식 예약이 들어왔다. 88만원짜리 폰에 20만~40만원대 웃돈이 붙어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최고 120만원에 거래된 사례도 보도됐다. 정작 헤럴드경제가 전한 LG텔레콤 집계로는 초기 구매자 2,000명 가운데 20~30대가 80%였다. 국내 판매는 20만 대로 집계됐다. 명품 마케팅으로 내놓은 폰을 산 손님은 얼리어답터 쪽이었다.
15년 넘게 이어진 ‘감압식’ 오류
이 폰을 둘러싼 기록에서 가장 이상한 대목은 한국어 위키백과의 ‘싸이언 프라다’ 문서와 나무위키가 지금도 이 화면을 감압식이라고 적는다는 점이다.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달고 나온 첫 휴대폰이라는 사실과 정반대되는 말이, ‘최초’라는 주장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셈이다.
위키만의 사고로 보기도 어렵다. 이투데이는 2021년 4월 6일 기사에서 이 폰을 “세계 최초로 컬러 액정을 탑재한 감압식 풀터치폰인 ‘프라다폰’”이라 적었고, 동아일보는 2020년 4월 13일 “압력을 받아 입력이 이뤄지는 감압식(저항막 방식) 액정을 채택”했다고 썼다. 이뉴스투데이와 FETV도 2021년 4월 같은 문장을 내보냈다. 서로 다른 매체가 10년 넘게 같은 문장을 물려받았다.
당시 기록은 한결같이 정전식을 가리킨다. 2007년 1월 18일의 발표 기사도, GSMArena 스펙 DB도, 그해 5월의 정식 리뷰도, 1월 실적발표에 나온 공급사 설명도 모두 그렇다. 더 얄궂게도 국내 매체가 제대로 쓴 적이 있다. 2009년 프라다폰2가 나올 때 디지털타임스는 신기능으로 “새로운 3차원 UI와 정전식 멀티터치를 지원해 두 손가락으로” 조작한다고 정확히 보도했다. 정작 국내 매체들은 1세대를 돌아볼 때 손가락만 받던 화면을 펜으로 누르는 감압식으로 적었다. 한국어는 이 폰의 최초를 가장 자주 인용한 언어이면서, 그 최초가 무엇이었는지를 가장 자주 틀리게 적은 언어이기도 했다.
프라다폰의 정전식 터치패널은 미국 시냅틱스의 ClearPad였고, 2007년 1월 25일 실적발표에서 CEO가 제품 이름을 직접 불렀다.
이 폰이 내세울 수 있는 최초는 풀터치가 아니라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단 첫 휴대폰이다.
화면은 3.0인치 240×400, 화면 속 그림은 마크로미디어 플래시로 그렸고 메인 메뉴는 큰 원형 아이콘의 4탭 구조였다.
미국 정식 출시는 없었지만 1900MHz 지역에서는 쓸 수 있었고, 초고가 MVNO 보체가 이 폰을 제공했다는 보도도 남아 있다.
한국형 LG-SB310·LB3100은 지상파DMB와 필기 인식을 얹어 88만원에 나왔고, LG전자는 2007년 5월 15일 출시를 알렸다.
“사용성 측면에서 터치스크린은 불편합니다. 하지만 최근 진동기술의 발달과 대화면에 대한 욕구 등은 터치스크린이 모바일 기기의 인터페이스의 혁신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 차강희 LG전자 MC디자인연구소장, 아이뉴스24 인터뷰(2007년 2월)
프라다폰은 정전식 화면을 처음 달고 매장에 오른 휴대폰이었다. 그 유리를 만든 회사는 2007년 실적발표에서 스스로 이름을 밝혔는데도 기록에는 오래 빈칸으로 남았다. 화면 방식은 정반대인 감압식으로 적혀 15년 넘게 굳었다. 진짜 불운은 경쟁 기기가 아니라 기록이었다.
참고 자료
- LG KE850 Prada goes official
- LG KE850 Prada review
- Synaptics Inc (SYNA) Q2 FY2007 Earnings Call Transcript
- Synaptics, the Prada, and the Scrawla
- Touch me, please touch me
- 밥 매키 진술서 — PTAB IPR2023-00708 제출 문서
- Mobile Innovation Meets Avant-Garde Design
- LG PRADA KE850 Phone Review
- Voce flames out: another MVNO casualty
- LG전자, 한국형 프라다폰 출시
- 한국형 프라다폰, 15일부터 판매
- 이투데이 2021-04-06 프라다폰 회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