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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폰, 앞면 버튼을 지우려고 넣은 칩 하나

미국판을 뜯어 보니 앞면에서 버튼을 지운 자리는 구리 감지패드 아홉 개와 정전기까지 가려내는 알고리즘이 메우고 있었다. 주머니 속 오작동을 막으려고 잠금은 두 번 눌러야 풀리게 했다. 정작 미국판 앞면에는 실물 방향키가 되살아났다.

초콜릿폰, 앞면 버튼을 지우려고 넣은 칩 하나

초콜릿폰의 앞면은 손끝으로 훑어도 걸리는 데가 없다. 통화 버튼도 방향키도 거기 있지만 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눌러도 들어가지 않고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반응한다. 숫자를 누르려면 슬라이드를 위로 밀어 올려야 한다. 누르는 손맛은 그 안쪽 열두 칸에만 남았다.

스펙 경쟁 한복판에서 나온 발상

그 무렵 휴대폰 진열대는 숫자 싸움터였다. 화소 수와 메모리 용량, 두께를 한 줄이라도 더 채우는 쪽이 이겼다. 버튼은 눌러야 눌리는 물건이었고 딸깍하는 감각은 기계가 입력을 받았다는 신호였다.

LG전자 디자인연구소의 차강희는 이 전제를 통째로 뒤집는 생각을 품었다. 화면도 버튼도 없는, 휴대폰 같지 않은 휴대폰이었다.

흰색 LG KG800 본체, 앞면 방향키가 붉게 켜져 있다
흰 몸체 위에서 방향키만 붉게 켜진 유럽 GSM판 KG800.

Petar Milošević · Wikimedia Commons · CC BY 4.0

애니콜에 밀리던 싸이언

그때 LG 싸이언은 잘 만들어도 잘 팔리지 않는 브랜드였다. 2021년에 나온 회고 기사는 그 시절을 “LG 싸이언은 삼성 애니콜에 못 미치는 휴대폰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오진욱의 『핸드폰 연대기』는 2005년 들어 분기마다 수십억~수백억원대 영업손실이 이어졌다고 전한다.

LG는 사양표 대신 브랜드의 격으로 판을 뒤집기로 했다. 프리미엄 시장을 정면으로 노린 별도 브랜드에 '싸이언 블랙라벨'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초콜릿폰이 그 첫 작품이 됐다. 헤럴드경제는 훗날 이 성공을 네 사람의 몫으로 정리한다. 디자인을 그린 차강희, MC디자인연구소장 김진, 존슨앤존슨에서 건너와 '블랙라벨'이라는 개념을 들여온 마창민, 개발을 이끈 단말기연구소장 안승권이다.

이 승부수의 근거는 기록이 엇갈린다. 『핸드폰 연대기』는 소비자의 67%가 기능이나 가격보다 디자인을 먼저 본다는 시장조사를 전략 전환의 이유로 든다. 정작 차강희는 같은 시기 인터뷰에서 초콜릿폰을 10개월 전에 기획하면서 소비자 선호도조사를 아예 참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뛰어넘는 매력이 있어야 설득도 된다는 이유였다.

설득은 쉽지 않았다. 그는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얇고 심플하게 한번 가보자고 했더니, 기능성이 중요하다는 등 내부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사내를 설득한 다음에는 개발 사실을 숨겨야 했다. 『핸드폰 연대기』에 따르면 LG전자는 관련 부서에도 진행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 한술 더 떠 자금 결제가 안 돼 개발이 미뤄지고 있다는 소문을 흘려 경쟁사의 눈을 돌렸다.

이름은 나중에 붙었다. 광고대행사 크리에이티브에어의 신입사원이 시제품을 보고 “어! 이거 초콜릿 닮았네”라고 말한 데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경향신문에 실렸다. 개발팀과 마케팅팀은 3주 동안 찬반을 주고받았다. 싸구려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쪽과 기능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쪽이 맞섰고 결론은 감성 쪽으로 났다. 초콜릿을 닮았다는 인상이 이름 다음에 왔다는 점은 기사들이 한목소리로 전한다.

버튼을 없애려면 칩 하나가 필요했다

앞면에서 버튼을 지운다는 결정은 스케치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눌리지 않는 버튼은 눌렸다는 사실을 스스로 전기로 만들어 내야 한다. 손가락이 가까이 오면 패드 둘레의 정전용량, 그러니까 전기를 머금는 양이 미세하게 바뀐다. 정전식 센서는 그 변화를 읽어 입력으로 판정한다. 누름의 물리학을 근접의 전기학으로 바꾼 셈인데 천 조각이나 금속붙이, 정전기도 똑같이 건드린다는 문제가 따라왔다.

판정을 맡은 부품은 사이프레스 세미컨덕터의 PSoC였다. 미국 버라이즌용 VX8500을 뜯어 본 embedded.com의 분해 기사는 그 칩을 CY8C21434-24LFXI로 짚는다. 32핀짜리 패키지 하나가 구리 감지패드 아홉 개를 맡았다. 사이프레스 팀은 2005년 5월 처음 LG에 연락했고 그해 8월 무렵 개발이 시작됐다.

5월에 만나 8월에 시작한 일이 그해 11월에는 완제품이 되어 있었다. 사이프레스의 2005 회계연도 연차보고서는 국내형 LG-KV5900의 전면 터치 패널에 자사 PSoC 칩 하나와 CapSense 기술이 쓰였다고 밝힌다. 유럽형도 같았다. LG가 2006년 4월에 낸 KG800/MG800c 영문 서비스 매뉴얼을 보면 방향키 회로도의 U1000 자리에 CY8C21434가 적혀 있다.

칩을 꽂는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었다. 같은 분해 기사에 따르면 이 터치 시스템은 세 가지를 한꺼번에 풀어야 했다. 두 버튼이 동시에 눌렸을 때 무엇을 먼저 받아들일지 가리는 처리, 정전기 방전과 사람 손가락을 갈라내는 판별 알고리즘, 딱딱한 FR4 기판을 휘어지는 기판으로 바꾸는 설계 변경이다. 흔히 출시 뒤 급히 덧댄 땜질로 이야기되지만 이 분해 기사는 세 가지 모두 처음부터 설계 조건이었다고 쓴다.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몸체를 얇게 만들려고 내부 구조를 여러 층에서 한 층으로 줄이고 부품 대부분을 새로 개발해야 했다. 완성된 치수는 지금도 자료마다 어긋난다. 81g에 두께 14.4mm라고 쓴 매체가 있고 105.5×51.5×14.9mm에 102g이라고 쓴 쪽도 있다. PC사랑은 당시 휴대폰이 대개 110g쯤이었다고 적었으니 어느 쪽 숫자를 믿어도 가벼운 축이었다.

주머니 속 오작동을 막는 두 번 누르기

버튼을 지우자 주머니 안에서 문제가 생겼다. 누르는 버튼은 주머니에서 잘 안 눌리지만 스치기만 해도 반응하는 버튼은 천에도 반응한다. LG는 제품이 나오기 전에 이미 이 문제를 문서로 다뤘다. KG800 공식 사용설명서의 '터치 보호' 기능을 보면 슬라이드를 닫거나 통화 중일 때는 터치 버튼이 자동으로 잠겼다. 닫힌 상태에서 풀려면 볼륨 버튼을 두 번 눌러야 했다.

두 번을 요구한 것은 한 번이면 주머니 속에서도 풀릴 위험이 있어서였다. 대신 주머니에서 꺼낸 사람도 매번 두 번을 눌러야 했다. 2006년 9월 미국형 VX8500에 올라간 펌웨어 T85VZV04는 스피커폰 기능을 더하면서 한 번 누르기 옵션을 함께 넣었다. 흔히 도는 이야기와 달리 이 업데이트는 오작동을 고친 것이 아니다. 안전을 위해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어 둔 장치를, 불편하다는 목소리에 맞춰 반쯤 되돌린 조정이었다. LG가 붙인 이름은 '매직 터치'였지만 실제 제품은 마법과 거리가 있었다.

슬라이드를 연 흰색 LG VX8500, 아래쪽에 열두 칸 숫자 키패드가 드러나 있다
슬라이드를 밀어 올리면 앞면과 달리 평범한 열두 칸 숫자판이 나온다.

The Random Edito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예쁘다와 잘못 눌린다 사이

그래서 실제로는 어땠나. 2006년 8월 엔가젯의 짧은 리뷰는 오입력이 잦았고 가끔은 전화가 저절로 걸렸다고 적었다. 'Erroneous entries were frequent, including the occasional accidental phone call'이라는 문장이다. 그러면서도 외관만큼은 'The phone's pretty hot looking, no question'이라며 인정했다.

그런데 같은 해 mobile-review.com의 KG800 리뷰는 정반대로 적었다. 움직이는 부품이 없으니 일반 버튼에서 흔한 오작동과 오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지역마다 모델이 달랐고 소프트웨어 판본도 사용자의 주머니도 달랐다. 이 버튼이 처음부터 악명 높았다는 이야기는 절반만 맞는다.

터치만 도마에 오른 것도 아니다. mobile-review.com은 화면 품질이 삼성 E900보다 못하다고 지적했다. GSMArena의 정식 리뷰는 전반적인 완성도를 중간고사 리포트를 쓰는 열등생 수준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같은 리뷰는 인터넷 포럼 일각이 이 폰을 'the RAZR killer'라 부른다고 덧붙였다.

빨리 팔렸고 숫자는 자주 틀렸다

기능 점수와 무관하게 판매는 빨랐다. 『핸드폰 연대기』는 출시 3주 만에 하루 개통 수가 1000대를 넘었고 그해 LG전자 모델 가운데 그런 기록은 이 폰뿐이었다고 적는다. 이데일리에 따르면 2006년 3월까지 국내에서만 34만5000대가 팔렸다. 한 달에 10만대꼴로, LG전자 국내 월간 판매량 25만대의 약 40%를 이 한 기종이 차지한 셈이다.

해외에서는 더 빨랐다. 같은 책에 따르면 2006년 5월 해외 판매를 시작한 초콜릿폰은 4주 만에 55만대가 팔려 6개월 동안 쌓은 국내 누적 45만대를 넘어섰다. 영국 최대 유통망 카폰 웨어하우스는 출시 직후 이 폰을 판매 1위에 올렸고 멕시코에서는 후불제 시장 점유율 25% 이상으로 1위였다.

여기서 자주 틀리는 숫자가 하나 있다. 2006년 4월에 1000만 대를 넘겼다는 이야기다. 15년쯤 뒤에 쓰인 회고 기사 몇 편이 그렇게 적었고 그 문장이 계속 복사됐다. 당시 기록은 다르다. 엔가젯은 2007년 4월 27일 기사에서 LG가 1000만 대 출하를 발표했다고 전하며 한국 출시 18개월, 세계 시장 진출 11개월 만이라고 못 박았다. 2006년 4월은 국내 집계가 50만에서 60만 대 사이로 갈리던 무렵이다. 자릿수가 다르다.

그 뒤로도 판매는 빠르게 늘어 파이낸셜뉴스 결산 기준 2007년 12월 3일 1500만 대를 넘겼다. 2009년에는 GSMArena와 FoneArena가 계열 누적을 2000만 대 이상으로 적었다. 다만 이 폰이 회사를 혼자 힘으로 적자에서 흑자로 돌려놨다는 영문 위키백과식 설명은 조심해서 읽는 편이 낫다. 같은 시기 국내 결산 보도에는 그런 재무 문구가 나오지 않는다.

대륙마다 앞면이 달랐다

한국 밖에서는 이름도 화면도 지역마다 달랐다. 유럽 GSM 시장에는 128MB 메모리와 176×220 화면을 단 KG800이 나갔고 영국에는 3G판 KU800(240×320), 캐나다에는 TG800이 2006년 말 뒤따른 것으로 알려진다. 유럽 출시일조차 자료마다 5월 3일과 5월 15일로 갈리고 값도 자급제 £300 언저리에서 500~650달러 상당까지 폭이 넓다.

가장 크게 바뀐 쪽은 미국형이었다. 앞면에 숨겨 두었던 방향키가 버라이즌용 VX8500에서는 실물 D패드로 되돌아왔다. 게다가 그 D패드는 음악 재생 조작을 겸했다. 버튼을 지웠던 앞면에 미국판은 다시 버튼을 넣은 셈이다. 터치휠은 '아이팟 클릭휠의 축소판'처럼 보였고 외부 화면도 QVGA로 커졌다고 소개된다. 왜 되돌렸는지 설명하는 당시 기록은 찾기 어렵다.

슬라이드를 닫은 흰색 LG VX8500, 앞면 아래쪽에 원형 방향키가 보인다
미국판 VX8500은 슬라이드를 닫아도 앞면에 원형 D패드가 남는다.

The Random Edito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미국이 이 폰을 받아들인 방식

미국 매체가 이 폰을 처음 언급한 시점은 의외로 이르다. 기즈모도는 2005년 11월 4일 슬래시폰발 정보를 인용해 'LG KV5900 Cyon Slider'라는 짧은 글을 올렸다. 기자는 이 얇은 슬라이더에 대해 아는 것이 그게 전부라고 스스로 덧붙였다.

실제 판매는 그로부터 아홉 달 뒤였다. VX8500은 2006년 7월 말 버라이즌 온라인 판매를 시작해 8월 초 매장에 풀린 것으로 전해진다. 값은 2년 약정 기준 199.99달러였고 50달러 메일인 리베이트를 받으면 약 149달러였다. 색은 기본 블랙 '다크 초콜릿'에 민트·화이트·스트로베리·체리 초콜릿이 더해진 것으로 소개된다. 사실상 검은색 중심이었던 한국·유럽판과 대비된다.

비스듬히 놓인 검은색 LG VX8500
비스듬히 놓인 검은색 VX8500. 닫힌 앞면 방향키 둘레에 음악 조작 아이콘이 보인다.

Headwes ( talk ) ( Uploads ) · Wikimedia Commons · CC BY 2.5

Verizon Wireless Commercial | LG Chocolate Phone | 2006

2006년 버라이즌이 미국에서 내보낸 VX8500 TV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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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리뷰의 평가는 갈렸다. PCMag의 사샤 세건은 별 다섯 중 넷을 주며 'This phone is an acquired taste, but it is a sweet one'이라고 맺었다. 취향을 타지만 달긴 달다는 뜻이다. 플래시 없는 130만 화소 카메라는 그 급에서 평균이라고 봤다. Mobile Tech Review는 이 카메라를 삼성 SCH-a990의 320만 화소와 나란히 놓았다. 320만 화소와는 겨룰 수 없어도 130만 화소 무리에서는 앞선다는 평이었다.

CNET의 켄트 저먼은 10점 만점에 7.0을 주고 'it doesn't quite live up to the hype', 아름답게 만들어졌지만 소문만큼은 아니라고 썼다. 폰스쿠프의 에릭 린은 신호가 좋아도 통화가 끊겼고 신호가 나쁘면 확실하게 끊겼다고 적었다.

배터리 리콜 이야기도 사실과 다르다. VX8500 배터리에 결함이 있어 리콜됐다는 말이 오래 떠돌았다. 그러나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에서 확인되는 버라이즌-LG 휴대폰 배터리 리콜은 위조 LG TM-510 배터리 약 5만개 건 하나뿐이다. 리콜번호는 04-559, 발표일은 2004년 6월 24일로 모델도 연도도 다르다. 이 폰에서 실제로 문제가 된 것은 지속시간이다. CNET은 공칭 통화시간 3.5시간짜리인 이 폰이 자체 시험에서 2.5시간을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마케팅의 열기는 제품 수준을 웃돌았다. Mobile Tech Review의 통 장은 그 과열을 이렇게 비꼬았다. 'With the enormous marketing effort pushing the LG Chocolate phone, you wonder if everyone walking down the red carpet at movie premiers will have one in their Channel [sic] bags.' 레드카펫을 걷는 사람 모두가 샤넬 백에 하나씩 넣고 다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는 뜻이다.

블랙라벨의 계보, 그리고 끝

블랙라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탄 '샤인'은 2006년 10월 18일 스테인리스 스틸 몸체로 발표돼 2008년 LG의 두 번째 텐밀리언셀러가 됐다. 그런데 초콜릿폰이 후속작에 남긴 흔적은 겉모습보다 앞면 안쪽의 부품표에서 더 또렷하다. 시냅틱스는 2007년 8월 27일 2세대 모델 VX8550의 네 버튼 인터페이스에 자사 'OneTouch' 정전식 솔루션이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첫 세대를 맡았던 사이프레스에서 공급사가 바뀐 것이다.

테크크런치는 이 변경을 기존 터치 버튼을 향한 불만에 LG가 대응한 것으로 읽었다. 영문 위키백과와 폰아레나에 따르면 이후 미국 매대에는 '초콜릿 스핀'(VX8550), '초콜릿 3'(VX8560),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얹은 '초콜릿 터치'(VX8575)가 차례로 놓였다. 정전식 실험이 앞면 키를 지나 화면 전체로 번진 셈이다.

터치 실험은 다른 제품으로도 이어졌다. 정글은 프라다폰을 '초컬릿 폰의 얼라이언스 디자인'이라 부르며 '초컬릿 폰에서 시작된 터치의 기술이 프라다폰에 와서 그 완성을 맺는다'고 평했다. 블랙라벨의 네 번째 모델은 2009년의 BL40, 이른바 '뉴 초콜릿폰'이다. GSMArena와 FoneArena는 오리지널 초콜릿폰을 설계한 바로 그 팀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화면은 4인치 800×345로, 가로세로 21 대 9라는 비율은 2009년 휴대폰에서 낯선 것이었다.

그린데일리는 LG전자가 2008년 한 해 휴대폰 1억 대를 넘겨 모토로라를 제치고 세계 3위 제조사가 됐다고 보도했다. 13년 뒤인 2021년 4월 5일, 같은 회사의 이사회는 휴대폰 사업 철수를 공식화했다. 차강희는 2017년 인터뷰에서 '좋은 디자인은 최고의 디자인이 아니고 최적의 디자인이다'라고 말했다.

What's on my LG Chocolate...16 years later

2022년에 올라온 회고 영상으로 16년 뒤 이 폰 안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들여다본다.

Griffin Pierson

한국이 기억하는 초콜릿폰

국내 출시일은 2005년 11월 22일, 출고가는 548,900원이었다. 같은 물건이 통신사에 따라 LG-SV590, LG-KV5900, LG-LP5900이라는 세 모델명을 달고 매대에 올랐다. 그날 저녁 7시 서울 W호텔 비스타홀 런칭쇼는 아나운서 황현정의 사회로 열렸다. 뉴욕 명품거리를 본뜬 '블랙라벨 에비뉴'라는 테마 아래 퍼포먼스가 이어졌고 김태희·현빈·다니엘 헤니가 각각 나온 광고 3편도 그 자리에서 처음 공개됐다. 국내에 실제로 나온 색은 블랙·화이트·핑크였다고 전해진다.

행사 자체가 전략이었다. 홍보대행사 브이콤의 조다솜은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IT 제품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으로 인식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간담회를 없애고 명품 패션쇼가 자주 열리는 W호텔에 연예인과 트렌드 세터를 불러 뮤지컬 퍼포먼스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애니콜 이미지가 강하다고 보고 입소문에 힘을 쓰는 패션지를 홍보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광고도 한 편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 배우가 한 편씩 맡은 광고 뒤에는 김태희와 다니엘 헤니의 장면에 현빈이 질투하는 네 번째 편이 예고돼 있었다. 동아일보는 훗날 삼성 애니콜과 LG 초콜릿폰의 이 '한 제품에 여러 모델' 방식을 신용카드와 주유소, 가구로 번진 멀티 광고 유행의 출발점으로 짚었다.

상은 제품이 받았다. LG-KV5900은 2005년 11월 30일 산업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한 우수산업디자인 상품 선정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다만 그 상을 누가 받았다고 적을지는 기록이 갈린다. 차강희 본인 인터뷰는 이를 자신의 이력으로 적고 헤럴드경제는 당시 MC디자인연구소장 김진 상무로 적는다. 시장도 반응했다. LG전자 주가는 2005년 12월 초 8만4400원으로 마감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무대 위 공연이 진행 중인 뉴 초콜릿폰 국내 쇼케이스 현장
무대 뒤로 'new chocolate BLACK LABEL SERIES' 문구가 걸린 2009년 국내 쇼케이스 현장.

LG전자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회사 안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연말 LG전자 임직원 2,605명이 참여한 사내 설문에서 초콜릿폰이 국내외에서 히트를 친 것이 1,070명(41.06%)의 지지로 그해 최고 뉴스 1위에 올랐다. 그런데 이 설문 기사가 엉뚱한 곳에서 다시 인용된다. 2006년 LG가 판 휴대폰 2,650만 대 가운데 27%인 650만 대가 초콜릿폰이라는 문장인데, 출처로 지목된 기사에는 세 숫자가 모두 없다. 참가자 2,605명이 2,650만 대로, 지지율 41.06%가 점유율 27%로 바뀌어 굳은 것으로 보인다.

회사 안에서는 공학자가 문제를 진단했다. 초콜릿폰이 팔려 나가던 2006년 2월, 단말연구소장 안승권은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LG 휴대폰이 품질을 끌어올리고도 선택받지 못한 이유를 기능이 아니라 감성에서 찾았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그다지 실용적이지 않은 700만 화소폰을 개발하거나 연간 1500만 대 규모의 내수시장에 50종을 내놓는 것은 바람직한 전략이 아니라고도 말했다.

  • 미국판 VX8500을 뜯어 보면 32핀 패키지의 사이프레스 PSoC 한 칩이 구리 감지패드 아홉 개로 앞면 터치 키를 읽었다.

  • 정전기 판별, 두 버튼 동시 입력 우선순위, FR4를 휘어지는 기판으로 바꾸는 전환은 출시 뒤 땜질이 아닌 처음부터의 설계였다.

  • 국내 초기 판매 집계는 자료마다 50만~60만 대로 갈리고 세계 누적 1000만 대는 2006년이 아니라 2007년 4월이었다.

  • 유럽 KG800, 영국 KU800, 캐나다 TG800, 앞면에 실물 D패드를 되살린 미국 VX8500처럼 지역마다 다른 모델이 나왔다고 알려진다.

  • '2006년 650만 대·점유율 27%'라는 수치는 출처로 지목된 기사에 없다. 사내 설문의 2,605명·41.06%와 뒤섞인 것으로 보인다.

“LG 휴대폰이 품질이 좋아진 후에도 선택받지 못했던 것은 감성적으로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뿌듯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감성 차원에서 접근한 전략이 적중했다.” — 안승권 LG전자 단말연구소장, 한국경제 2006년 2월

초콜릿폰은 앞면에서 버튼을 지운 만큼 안쪽이 복잡해진 폰이었다. 감지패드 아홉 개를 칩 하나가 읽었고 정전기와 사람 손가락을 갈라내는 판별도 처음부터 설계 조건이었다.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지만 세계 누적 1000만 대가 찍힌 해는 흔히 도는 이야기보다 한 해 늦다. 이 설계를 가장 크게 바꾼 시장은 하필 LG가 가장 갖고 싶어 한 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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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