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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ZMORY MAGAZINE

이건희폰 SGH-T100, 뚜껑을 열면 색이 있었다

2002년 봄 599유로에 나온 은색 폴더폰이 1년 5개월 만에 1,000만 대를 넘겼다. 그런데 이 전화기에 붙은 설명은 대부분 나중에 만들어졌다. 실제로 해낸 일과 기억되는 이야기 사이에는 틈이 있다.

이건희폰 SGH-T100, 뚜껑을 열면 색이 있었다

2002년 3월, 독일 하노버. CeBIT 개막 첫날 삼성 부스에 손바닥만 한 은색 조개껍데기 하나가 놓였다. 닫아 두면 별것 없었다. 타원으로 파인 홈 안에 작은 흑백 창, 모서리에 짧은 안테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춘 것은 뚜껑을 열었을 때다. 그 안에 색이 있었다.

이름은 SGH-T100. 그해 4월부터 팔렸고 유럽 가격표에는 599유로가 붙었다. 물건 자체는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 정작 따져봐야 할 것은 세계 최초의 1,000만 대라거나 회장이 설계도를 직접 그렸다거나 이 전화기 덕분에 삼성이 세계 3위가 됐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제품이 나오고 한참 뒤에 만들어진 문장들이다.

컬러 화면이 아직 비싸던 해

2002년 초의 휴대폰 시장은 순위표부터 지금과 달랐다. 가트너 집계로 2001년에 휴대폰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판 회사는 지멘스로, 2,975만 3,000대에 점유율 7.4%였다. 삼성은 2,823만 4,000대(7.1%)로 4위였고 에릭슨이 5위였다. 삼성이 당장 따라잡아야 할 상대는 조금 앞서 있던 지멘스였고 선두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면 쪽도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컬러 액정은 있었지만 비쌌고 업계는 값싼 STN 계열과 밝은 TFT, 두 가지 액정 방식 사이에서 원가를 저울질했다. 그해 삼성SDI가 밀던 UFB-LCD는 TFT와 같은 6만 5,000색을 내면서 생산원가를 30~40% 낮췄지만 170칸델라로 TFT의 200칸델라보다 어두웠다. 색을 보려고 얼마를 더 낼 사람이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삼성은 가장 밝은 화면과 가장 예쁜 몸체를 얹어 제일 비싼 값을 받는 쪽을 골랐다. 이 선택이 어디서 나왔는지 보려면 7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구미 운동장에서 태운 15만 대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임직원 2,000여 명이 모였다. 그 앞에 불량 애니콜과 무선 단말기 약 15만 대가 쌓였다. 당시 시가로 500억 원어치였다. 무선사업부 불량률은 12%에 가까웠다. 더미에 불이 붙었고 뒷날 사람들은 이 장면을 애니콜 화형식이라 불렀다.

그날 회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매체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머니투데이는 “소비자한테 돈 받고 물건 파는데 불량품을 내놓는 게 미안하지도 않으냐”라는 질책을 싣는다. 지디넷은 다른 문장을 싣는다. “휴대폰 품질에 신경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비싼 휴대폰, 고장 나면 누가 사겠습니까”라는 말이다. 가장 유명한 장면의 발언조차 기록이 갈린다.

효과는 빨랐다고 기록된다. 다섯 달 뒤인 1995년 8월 애니콜은 국내 점유율 51.5%로 모토로라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듬해 신년사에서 회장은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포했고 1997년 삼성은 사내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에 디자인 부문을 새로 만들었다. 선언이 제도로 굳은 셈이다.

다만 화형식 바로 뒤에 T100이 나온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7년과 여러 세대의 제품이 있다. 2020년 추모 기사들은 1993년 미국 베스트바이 매장에 먼지를 쓴 채 놓여 있던 삼성 제품 일화를 T100 단락 앞에 붙여 두기도 했다. 두 사건 사이에는 9년이 있고 둘을 잇는 당시 기록은 없다. 나란히 실렸다고 인과가 생기지는 않는다.

조약돌이라 부른 94그램짜리 몸체

88 × 50 × 22밀리미터에 94그램. 숫자만 보면 평범하다. 모서리를 죽이고 옆면을 둥글게 부풀린 은색 몸체는 손바닥 안에서 각진 데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물건을 설명할 때 촉감부터 말했다. 조약돌이라는 비유는 2011년 회고 기사에도 남아 있다. 유선형 폴더가 손에 쥐기 편했다는 이야기다.

덮개를 닫은 은색 삼성 SGH-T100의 앞모습
덮개를 닫은 SGH-T100. 타원으로 파인 홈 안에 작은 외부 창이 있고 모서리에 짧은 안테나가 솟아 있다.

AnVuong1222004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AnVuong1222004 · CC BY-SA 4.0

그 형태를 그린 사람의 이름도 남아 있다. 삼성전자 수석디자이너 현상민이다. 2013년 헤럴드경제 비즈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이건희폰’으로 불린 SGH-T100을 삼성전자의 첫 밀레니엄 셀러 디자인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고 2002년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았다. 1996년의 선언 뒤에 1997년 상이 생겼고 2002년에는 이 제품의 디자이너가 그 상을 받았다. 설계도 일화보다 덜 극적이어도 이쪽에는 근거가 있다.

삼성 뉴스룸은 뒷날 이 디자인이 넓은 화면으로 글을 읽기 편하게 하고 조약돌 같은 느낌을 준 덕분에 단일 모델로 1조 원 넘는 매출을 올렸다고 정리한다. 회사가 자기 제품을 설명한 문장이니 걸러 읽어야 하지만 촉감을 말하던 단어가 회사 공식 설명에까지 들어간 것은 분명하다.

Samsung SGH-T100 | Original Commercial (2002)

2002년에 방영된 SGH-T100 TV 광고 원본.

VF // DMSF Official Channel | #stopbadusers

뚜껑 안쪽의 4,096색 화면

이 전화기의 핵심은 뚜껑 안쪽 화면이다. 메인은 128×160 해상도의 TFT 액정으로 4,096색을 내고 한 화면에 열두 줄이 들어갔다. 덮개 바깥에는 세 줄짜리 흑백 보조창이 따로 붙었다. 2002년에 화면을 두 개 다는 일은 사치에 가까웠다.

덮개를 연 삼성 SGH-T100. 위쪽에 화면, 아래쪽에 키패드가 있다
덮개를 연 모습. 화면 아래에 원형 방향키가 있고 그 아랫줄에 통화·종료 버튼이 C 버튼을 사이에 두고 숫자 키패드 위로 올라와 있다.

AnVuong1222004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AnVuong1222004 · CC BY-SA 4.0

카메라가 없고 데이터 통신용 GPRS도 EDGE도 블루투스도 무선랜도 없다. 720mAh 배터리로 대기 60시간에 통화 80분, 전화번호부는 500개까지 들어갔다. 지금 기준으로는 빈약하지만 2002년에 이 물건을 살 이유는 화면과 손맛이었다. 값도 거기에 맞춰 매겨졌다.

여기서 20년째 되풀이되는 오류 하나를 정리하자. 이 전화기의 액정을 UFB-LCD라고 쓴 글이 아주 많다. UFB-LCD는 삼성이 2002년 3월 세계 최초 개발을 알리고 4월 19일 보도자료로 내놓은 STN 계열 기술이고 그 보도자료는 SCH-X570과 SCH-X580을 첫 채용 모델로 꼽았다. 당시 기사는 UFB를 TFT와 색 수는 같지만 더 어둡고 더 싼 대체재로 설명했다. T100이 쓴 TFT는 UFB보다 밝고 비싼 쪽이다.

‘세계 최초의 컬러 TFT폰’이라는 수식에도 조건이 붙는다. GSM 시장에 한정한 말이고, 삼성 안에서도 첫 TFT 애니콜은 이 모델이 아니라 두어 달 앞서 나온 다른 통신 방식의 자매 모델이었다고 당시 머니투데이는 쓴다. 최초라는 말에는 늘 단서가 따라붙고, 그 단서를 지우는 순간 사실이 신화처럼 굳는다.

나라마다 이름이 달랐던 전화기

이 전화기는 이름이 하나가 아니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SGH-T100, 중국에서는 SGH-T108, 미국에서는 SPH-A500, 한국에서는 SCH-X430으로 팔렸다. 세상이 GSM과 CDMA라는 서로 다른 통신 방식으로 쪼개져 있던 시절이라 같은 껍데기 안에 다른 무전기를 넣는 일이 흔했다.

수출형의 규격부터 보자. 삼성이 낸 영문 사용설명서 표지는 이 기기를 ‘DUAL BAND GSM TELEPHONE’으로 적었고 헝가리어판 인증 사양표도 GSM 900과 DCS 1800 두 대역만 적는다. 트라이밴드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1900메가헤르츠가 슬쩍 따라붙는 설명은 북미형 SPH-A500의 ‘Tri-Mode Dual-Band’ 분류가 형제 모델 쪽으로 옮겨 적힌 결과로 보인다.

그 북미형은 이름만 바꾼 물건이 아니었다. SPH-A500에는 FCC ID A3LSPHA500이 붙어 있고 공개된 2002년 시험보고서 사본에는 PCS CDMA 시험 기록과 함께 그 ‘Tri-Mode Dual-Band’ 분류가 남아 있다. 같은 세대의 폴더형 컬러 디자인을 나눠 썼어도 안에 든 무전기는 달랐다. 미국 소비자가 만난 물건의 이름은 A500이었다.

Samsung SGH-T100 Commercials (28 Languages)

SGH-T100 광고를 28개 언어 버전으로 모아 이어 붙인 아카이브 편집본.

shermanzuki

판매 집계도 이름별로 쪼개져 있다. 삼성전자가 2002년 11월 28일 낸 자료는 그해 10월까지 유럽 205만 대, 동남아 55만 대, 중국 50만 대, 미국(SPH-A500) 50만 대, 한국 90만 대로 모두 450만 대를 팔았다고 집계한다. 미국 출시를 둘러싼 혼선은 이 표로 풀린다. 삼성 뉴스룸은 2009년 회고에서 “2002년 4월 유럽과 아시아에서 먼저 선보였고, 8월엔 미국시장에도 내놓았다”라고만 쓰고 모델명은 밝히지 않았다. 그 탓에 미국에 나오지 않았다는 말도, 회사 기록이 틀렸다는 말도 돌았지만 둘 다 정확하지 않다. 국경에서 바뀐 것은 제품이 아니라 모델명이었다. 다만 ‘SGH-T100’이라는 이름 그대로 미국 GSM 통신사를 통해 팔렸다는 증거는 지금도 없다.

별명은 2020년에 생기지 않았다

이제 별명 차례다. 2020년 10월 25일과 26일, 이건희 회장 별세 소식이 전해진 이틀 동안 최소 열 곳의 매체가 사실상 같은 문장을 실었다. ‘이 회장은 이 제품 개발 단계부터 꼼꼼히 디자인을…’로 시작하는 문장이다. 열 곳에 똑같이 실린 문장은 열 번의 취재보다 틀에 박힌 설명 하나가 한꺼번에 퍼진 결과에 가깝다.

그래서 별명이 2020년에 만들어졌다고 짐작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2007년 4월 전자신문은 이 전화기를 벤츠폰·블루블랙폰·초콜릿폰과 함께 ‘1,000만대 클럽’으로 묶으면서 이런 별명이 제조사가 붙인 이름이 아니라 고객들이 붙여 준 애칭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해 3월 세계일보 기사도 ‘이건희폰’이라는 표기를 그대로 쓴다. 다만 2002년 출시 무렵 기사에서는 이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 13년 넘게 쓰이던 별명이 2020년 부고 기사에 한꺼번에 등장한 셈이다.

정장 차림으로 손을 모으고 앉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2013년 워싱턴의 한 조찬 행사에서 찍힌 사진으로 T100 시대의 모습은 아니다.

Republic of Korea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 Republic of Korea · CC BY-SA 2.0

그렇다면 회장은 이 전화기에 얼마나 손을 댔을까. 남아 있는 이야기의 최대치는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개발 단계부터 세심히 살폈다, 평소 즐겨 써서 늘 목에 걸고 다녔다 정도다. 설계도를 직접 그렸다거나 구체적인 형태를 지시했다는 이야기는 회사 공식 역사에도 디자이너 인터뷰에도 나오지 않는다. 2021년 한 매체에는 통화·종료 버튼을 위쪽에 두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특정 모델이 아닌 애니콜 전반에 대한 회고로 전해진다. 그 버튼 배치가 이 전화기의 특징인 것은 맞지만 회장과 이어 붙인 설명은 회고에서 나왔다.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는 현상민의 이름도 함께 기억하는 편이 공평하다. 회장의 이름을 딴 별명으로 알려진 전화기지만 2002년 사내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은 사람은 디자이너 현상민이다. 그는 1996년 삼성전자에 들어와 2000년대 후반까지 모바일사업부에서 애니콜 폴더 시리즈를 맡았다.

SGH-600이 먼저 1,000만 대를 팔았다

숫자로 돌아가자. 출시 6개월 만에 450만 대가 팔렸다. 2002년 12월 보도는 연말까지 600만 대를 내다봤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누적 1,000만 대를 넘겼다. 서울경제의 표현을 빌리면 출시 약 1년 5개월 만이다.

여기에 ‘삼성 최초’ 또는 ‘세계 최초’의 텐밀리언셀러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 시절 자료와는 맞지 않는 말이다. 동아일보는 2002년 11월 28일 기사에서 1998년 SGH-600이 이미 1,000만 대까지 팔린 적이 있다고 쓰면서 이번에 새로운 것은 6개월 만의 450만 대라는 속도라고 분명히 짚었다. 정작 7년 뒤 삼성 뉴스룸은 회고에서 SGH-600을 빼놓고 T100을 텐밀리언셀러 1호로 소개한다.

그러니 이 전화기가 세운 기록은 ‘최초’가 아닌 ‘속도’ 쪽에 있다. 회사가 정리한 계보에서도 T100 뒤로 2003년 하반기의 E700 벤츠폰, 1·2편을 합쳐 1,600만 대를 판 블루블랙폰, 2006년 12월의 E250, 2008년의 J700 드로그바폰이 차례로 붙는다. 뒤이은 모델들은 그 속도를 여러 번 갈아 치웠다. ‘출시 9개월 만에 600만 대’를 국내 판매량처럼 옮겨 적은 회고도 있는데, 2002년 11월 시점의 국내 판매는 90만 대였고 같은 자리에서 회사가 말한 ‘연말까지 600만 대’는 세계 목표치였다.

삼성은 이 전화기가 나오기 전에 3위였다

이 전화기에 가장 자주 얹히는 공로는 순위다. 2008년의 한 회고 기사는 화면 두 개와 조약돌을 닮은 유선형 폴더 디자인이 지멘스를 제치고 삼성을 노키아·모토로라와 함께 세계 3강에 올려놓았다고 쓴다. 그럴듯하지만 실제 시간 순서는 반대다.

가트너 집계로 삼성은 2002년 1분기에 이미 3위였다. 903만 대(9.6%)로 지멘스의 823만 대(8.8%)를 앞섰고 텔레콤페이퍼도 같은 분기의 2·3·4위를 모토로라·삼성·지멘스로 정리했다. T100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그해 4월이다. 3위에 오른 뒤에 전화기가 나온 셈이다. 국내 회고가 두 사건을 나란히 놓다 보니 출시 덕분에 순위가 올랐다는 잘못된 인과가 생겼다.

2분기에도 자리는 그대로였다. RCR 와이어리스는 삼성을 ‘이제 3위 업체’로 불렀다. 연간으로도 삼성 4,168만 4,400대(9.8%)가 지멘스 3,461만 8,000대(8.2%)를 앞섰고 점유율은 2001년 7.1%에서 2002년 9.8%로 올랐다. 라인업 전체가 한 계단 올라간 결과였다.

곁가지 오류도 같이 걷어내자. 삼성이 제친 상대는 소니에릭슨이 아닌 지멘스다. 소니에릭슨 합작법인은 2001년 10월에야 생겼다. 2002년 판매량을 4,300만 대로 적은 회고도 있지만 가트너가 실제로 소비자에게 팔린 대수로 집계한 숫자는 4,168만 4,400대다. 3위에 오른 시점도 매체마다 2002년 1분기, 상반기, 3분기, 2003년 1분기로 갈린다. 어느 시점을 잡더라도 그 자리를 이 모델 하나의 성과로 볼 수는 없다.

1,000만 대를 팔고 남은 리뷰는 두 편

이 전화기의 해외 리뷰는 의외로 찾기 어렵다. 찾아낸 2002년 평가는 독일 하이제의 3월 13일자 CeBIT 기사와 모바일리뷰닷컴의 10월 리뷰, 둘뿐이다. GSMArena 이용자 코멘트 세 건은 전부 2025~2026년에 쓰였다. 1,000만 대라는 판매량에 견주면 그 시절의 목소리는 적게 남았다.

그중 가장 구체적인 모바일리뷰의 평가는 냉정한 편이다. 컬러 화면은 “T100 is a first series model, which has a color screen and a successful realization”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적외선·GPRS·MMS·EMS가 전부 없다는 점을 나란히 적었다. 기능은 단순한 패션폰이지만 그 부류에서는 훌륭한 대표작이라는 결론이었다. 2002년 10월 기준 유럽 소매가는 450~500달러 선이었다.

상과 광고는 훨씬 화려했다. 2002년 11월 7일 삼성전자는 파리 샤를 드골공항 진출입로 옆에 이 전화기를 본뜬 초대형 조형물을 세웠다. 일반 광고물을 세우기 어려운 자리라 조형물을 택했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었고 같은 조형물이 상파울루 도심에도 섰다. 이탈리아 패션지가 UFO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라고 평했다는 소개와 독일 iF디자인상 최종 심사 진출 소식도 그해 11월 국내 보도에 함께 나온다.

광고는 나라마다 다시 찍었다. 폴란드·스페인·러시아·체코를 비롯해 최소 다섯 나라의 현지 버전이 지금도 유튜브에 남아 있고 그중 몇 편은 VHS 녹화본을 보관해 둔 개인 아카이브에서 나왔다. 후속 모델도 같은 길을 갔다. 2006년 말 해외에 나온 SGH-E250은 전 세계 5,000만 대가 팔린 것으로 소개된다. 이 전화기의 다섯 배다.

한국이 이 전화기를 기억하는 방식

국내에서 이 전화기는 SCH-X430이라는 이름으로 2002년 4월에 나왔다. 머니투데이의 출시 기사는 액정을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로, 벨소리를 40화음으로 적으면서 가격을 60만원대로 전한다. 같은 자리에서 삼성전자 관계자는 “자사는 올해 컬러 휴대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해 컬러 휴대폰 시장에서도 애니콜 신화를 이어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60%를 목표로 내건 자신감은 지금 읽어도 좀 무섭다.

국내형에는 수출형 사양표에 없는 것들이 붙었다. 이름을 부르면 걸리는 화자독립형 음성 다이얼링, 교통정보와 증권 시세를 받아오는 데이터 서비스, 모바일 결제용 ‘전자지갑’이다. 일부 사양표에는 사운드칩이 야마하 YMU762(40화음)로 적혀 있어 국내형과 수출형 사이에 부품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같은 사양표는 2004년 1월에 SCH-X430S라는 후속 개량판이 나왔다고 적는다.

파란색 이탤릭 서체로 쓴 애니콜 워드마크
2002년에 쓰던 애니콜 워드마크.

Samsung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 Samsung · Public domain

국내 시장을 보면 이 전화기가 뛰어든 자리가 보인다. 2002년 2월 국내 휴대폰 판매 135만여 대 가운데 컬러폰은 48만 대로 35.5%였고 그중 TFT-LCD는 4분의 1이 안 됐다. 경쟁은 이미 붙어 있었다. LG전자는 2001년 말 6만 5,000색 STN 컬러폰으로 국내 점유율을 30.8%에서 2002년 1분기 36.2%까지 끌어올린 참이었다. LG의 TFT 신제품은 5월쯤 나올 예정이었으니 4월의 SCH-X430은 한 달 앞서 들어갔다. TFT를 미는 삼성전자와 STN·UFB를 미는 삼성SDI의 집안싸움도 있었다. 삼성전자 김형걸 LCD사업부 상무는 “올 중순부터는 TFT-LCD제품의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는 2002년 10월까지 국내 90만 대였다. 정보통신부 모바일 기술대상 디자인 부문 대상도 받았다. TV 광고에는 이나영과 차태현이 나왔다고 전해지는데, 그때 이 폰을 썼다는 사람들도 사양보다 광고의 노래와 물총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값은 빠르게 내려갔다. 아이뉴스24의 중고 시세 연재는 2003~2004년 내내 14만~30만원 선을 기록했고 2004년 1월 한 기사는 16만 8,500원에 팔리고 있다고 적었다. 출시가의 4분의 1이다.

20년 뒤에 이 전화기를 다시 다룬 기사에는 실제 물건과 다른 설명이 실렸다. 2020년 10월의 추모 기사들은 ‘이건희폰’에 31만 화소 내장 카메라와 26만 2,000컬러 액정이 있다고 적었다. 수출형 SGH-T100에는 카메라가 없고 색은 4,096색이다. 같은 오류가 최소 세 매체에서 되풀이됐다. 세계 최초의 1,000만 대, 소니에릭슨 추월, 4,300만 대라는 설명도 같은 식으로 번졌다. 정작 이 물건의 출발점에 가장 가까운 문장은 출시보다 여섯 해 앞선 1996년 신년사에 있다.

다섯 줄 요약

  • 2002년 3월 CeBIT 개막일에 공개돼 4월부터 유럽에서 599유로에 팔린 88×50×22mm·94g의 곡면 폴더다.

  • 메인 화면은 TFT 4,096색 128×160(12줄), 덮개 바깥은 3줄 흑백이었고 카메라·GPRS·블루투스는 없었다. UFB-LCD를 쓴 기기가 아니다.

  • 수출형은 GSM 900/1800 듀얼밴드이고 미국판 SPH-A500은 FCC 문서가 따로 있는 CDMA 자매 모델이었다.

  • 2003년 1,000만 대는 사실이지만 최초는 아니다. 당시 기사는 1998년 SGH-600이 먼저 1,000만 대를 팔았다고 적었고 새로웠던 것은 약 1년 5개월이라는 속도다.

  • 삼성의 세계 3위는 이 전화기가 나오기 전인 2002년 1분기 집계에 이미 나타나며 제친 상대는 소니에릭슨이 아니라 지멘스였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야말로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 승부처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 이건희, 1996년 신년사

흑백과 컬러가 섞여 있던 2002년, 이 전화기는 4,096색 TFT 화면과 조약돌 같은 손맛만으로 1,000만 대를 넘겼다. 분명한 이정표다. 다만 ‘세계 최초의 텐밀리언셀러’도, ‘삼성을 3위로 올린 폰’도, ‘회장이 그린 설계도’도 나중에 붙은 설명이다. 덧붙은 이야기를 걷어내야 이 물건이 실제로 잘한 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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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GH-T100
  • SCH-X430
  • 컬러 TFT
  • 텐밀리언셀러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