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리 2600, 게임 하나로 되살아난 게임기
128바이트 메모리를 쓰던 게임기가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만나 다시 팔리기 시작했다. 카트리지만 바꾸면 새 게임을 즐기는 방식은 큰 시장을 만들었지만 쏟아지는 게임의 수와 품질까지 관리해 주지는 못했다.
1977년 가을 미국에서 나온 아타리 게임기는 나무 무늬를 두른 모습이었다. 카트리지를 갈아 끼우면 같은 본체로 다른 게임을 즐겼다. 메모리는 화면 한 장도 담지 못하는 128바이트. 앞면에는 아직 2600 대신 VIDEO COMPUTER SYSTEM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카트리지를 바꿔 쓰는 게임기는 1976년 페어차일드 채널 F가 먼저 팔았다. 아타리 VCS는 그 방식을 널리 퍼뜨렸다. 사람들은 인기 게임을 하려고 본체를 샀고 제작사들은 더 많은 게임을 내놓았다. 그 성공 뒤에는 팔리지 않은 카트리지가 쌓이는 문제도 기다리고 있었다.
새 게임마다 새 기계를 사던 시절
1970년대 중반에는 게임 내용이 기계의 회로에 정해져 있었다. 퐁 계열 게임기도 안에 들어 있는 몇 가지 변형만 즐겼다. 새 게임을 하고 싶으면 대체로 기계부터 다시 사야 했다. 제조사들은 비슷한 기계를 거듭 팔았고 집 안에는 게임기가 늘어났다.
IEEE 스펙트럼의 당시 기사에 따르면 게임을 바꿔 쓸 수 있는 기계를 내놓은 회사는 여럿이었으나 채널 F를 포함해 대부분 판매가 부진했다. 1983년 무렵 사람들이 찾던 제품은 VCS와 인텔리비전, 오디세이 2, 콜레코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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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는 나무 무늬를 입혀 게임기가 거실 가구와 어울리게 했다. 사진 속 라이트 식서는 1978년경 제품이다. 여섯 개 스위치와 video computer system이라는 이름을 갖췄지만 1977년에 나온 헤비 식서와는 다른 본체다.
자전거 이름을 붙인 칩
스티브 메이어와 론 밀너는 시제품 X725.86을 만들었다. Jolt 6502 카드를 쓰고 조립에 PDP-11을 이용한 이 기기는 컴퓨터 역사박물관에 남아 있다. 여기서 돌린 게임은 훗날 본체와 함께 팔린 《컴뱃》의 바탕이 됐다.
화면과 소리를 맡는 TIA 칩에는 스텔라라는 별명이 붙었다. 조 디큐어가 타던 자전거에서 따온 이름이다. 화면을 통째로 저장할 메모리가 없어 텔레비전의 전자빔이 선을 그릴 때마다 그 속도에 맞춰 화면을 만들어야 했다.
가정용 게임기의 값을 낮추려면 일반 컴퓨터 부품을 그대로 쓰기는 어려웠다. 워너 커뮤니케이션스는 1976년 아타리를 2,800만 달러에 샀다. IEEE의 1983년 기사는 워너가 VCS에 거는 기대가 이 결정에 크게 작용했다고 전한다.
128바이트로 화면을 만드는 법
완성된 CX2600에는 1.19MHz로 작동하는 MOS 6507이 들어갔다. 6502 계열에서 메모리 주소 범위를 줄인 28핀 칩이다. RAM 128바이트는 따로 달지 않고 RIOT 칩 안에 넣었다.
TIA에는 화면 한 장을 저장하는 공간인 프레임버퍼가 없었다. 개발자는 화면의 선마다 칩의 설정값을 바꿔야 했다. 화면을 그리는 프로그램은 15.24밀리초 안에 한 화면을 맞췄다. 흔히 빔 레이싱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게임 내용만큼 화면을 그리는 타이밍도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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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에는 조이스틱 두 개와 패들 조작기가 딸려 왔다. 사진의 CX40은 육각 막대와 붉은 버튼 하나로 조작한다. 과학박물관이 1978년 표준 모델로 소개하는 스틱이다. 수집가 자료에 나오는 초기 CX10과 사진 속 CX40은 구별해야 한다.
약 199달러에 담은 게임 한 벌
VCS는 1977년 가을 미국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과학박물관에 따르면 약 199달러짜리 묶음에 조이스틱 두 개와 패들, 《컴뱃》 카트리지가 들어 있었다. 본체를 사면 함께 들어 있는 게임부터 즐길 수 있는 구성이었다.
생산은 1977년 7월에 시작됐다. 그해 크리스마스철 매장 입고는 늦었다고 IEEE는 전한다. 조 디큐어는 그해 25만 대를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실패라고 할 규모는 아니었어도 훗날 약 3천만 대가 팔릴 만큼 뜨거운 출발은 아니었다.
1977년 12월 17일로 날짜가 붙은 VCS 출시 무렵 광고. 카트리지를 바꿔 더 많은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앞세웠다. 팬이 다시 올린 영상이다.
그해 겨울 광고는 이미 본체 자체보다 카트리지를 바꿔 가며 즐길 다음 게임을 앞세웠다.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살린 본체
1980년 3월 VCS용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매장에 나왔다. 래리 캐플런은 IEEE 인터뷰에서 죽어 가는 듯하던 VCS가 이 게임 뒤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었다고 회고했다. 사람들은 그 게임을 하려고 오래된 본체를 다시 샀다. 게임 하나가 기계의 인기를 되살린 셈이다.
아타리 아카이브가 내부 문서를 합쳐 계산한 전체 판매량은 약 620만 개다. 한 해에 100만 개 넘게 팔린 첫 가정용 카트리지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는 《팩맨》이 이보다 많이 팔렸다. VCS를 되살린 게임과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은 서로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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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앞쪽에는 1983년 폭스 비디오 게임즈의 《킬러 토마토》가 보인다. 아타리의 인기작 곁에 다른 회사가 만든 카트리지도 놓였다. 본체 하나에 여러 회사의 게임을 꽂는 시장이 생겼다.
이름을 인정받지 못한 개발자들
아타리는 게임에 개발자 이름을 싣거나 판매에 따른 보수를 주는 일을 거부했다. 1979년 5월 데이비드 크레인과 동료들은 레이 카사르를 만났다. 그해 10월 1일 크레인·래리 캐플런·앨런 밀러·로버트 화이트헤드와 짐 레비는 액티비전을 회사로 등록했다.
아타리는 허가 없이 VCS 게임을 판다며 액티비전을 고소했다. 두 회사는 1981년 12월 액티비전이 사용료를 내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이로써 본체를 만드는 회사와 별개로 게임을 파는 회사가 자리 잡았다. 다만 아타리가 게임의 품질을 검사해 관리하는 체계는 없었다.
검은 본체에 붙은 2600이라는 이름
아타리가 VCS에 2600이라는 이름을 붙인 때는 1982년 11월이다. 후속기 5200을 내놓으면서 기존 기기의 이름도 바꿨다. 오늘날 익숙한 아타리 2600이라는 이름은 첫 출시보다 뒤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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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82년 나무 무늬 모델은 앞면에서 난이도 스위치를 빼 네 스위치로 단순해졌다. 그래도 스위치 판의 이름은 VIDEO COMPUTER SYSTEM 그대로였다. 앞면에는 아직 2600이 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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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말의 검은 모델은 베이더라고 불린다. 나무 무늬를 없앤 이 본체 앞면에 처음 ATARI 2600이 찍혔다. 스위치 판에는 옛 이름 VIDEO COMPUTER SYSTEM이 남아 있어 두 이름을 함께 볼 수 있다.
1982년 'Have you played Atari today?' 광고 노래. 2600으로 이름을 바꾼 해의 전성기 광고를 팬이 다시 올린 영상이다.
오래 쓸 수 있었지만 만들기는 어려웠다
VCS의 가장 큰 장점은 새 카트리지만 꽂으면 계속 다른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데 있었다. 값싼 칩과 단순한 조작기를 쓰면서도 개발자가 프로그램으로 표현을 늘려 기기를 오래 쓸 수 있었다. 막대와 버튼 하나뿐인 CX40도 그 단순한 모습으로 기억됐다.
개발자에게는 까다로운 기계였다. 128바이트 메모리로 화면 저장 공간도 없이 15.24밀리초에 맞춰야 했다. 능숙한 사람은 제약 속에서 표현을 찾아냈지만 정해진 일정에 게임을 완성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게임을 파는 쪽에도 같은 양면이 있었다. 액티비전이 독립 회사로 자리를 잡고 좋은 게임 덕에 본체가 팔리자 다른 제작사도 몰려왔다. 아타리와의 합의 뒤 게임은 빠르게 늘었으나 품질이 모두 좋지는 않았다.
팔리지 않은 게임이 묻힌 곳
1983년 시장 붕괴에는 너무 많은 게임 생산과 제작사 증가, 가정용 컴퓨터와의 경쟁, 잘못 짚은 수요가 겹쳤다. 당시 신문이 보도한 아타리의 3분기 손실은 1억 8,000만 달러였다. 뉴욕타임스가 전한 그해 손실은 아타리 5억 3,600만 달러, 매텔 전자 부문 2억 1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스미스소니언은 《E.T.》도 시장 붕괴에 영향을 준 요인으로 본다. 판권 비용을 맞추려면 400만 개를 팔아야 했지만 판매는 100만 개를 넘긴 정도였다. 목표에 크게 못 미친 게임이었지만 시장 전체의 실패를 이 작품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1983년 9월에는 텍사스 엘패소 창고의 남은 재고를 뉴멕시코 앨라모고도에 묻었다. 전 관리자 제임스 헬러의 증언에 따르면 각종 게임 약 72만 8천 장이었다. 《E.T.》만 묻힌 곳은 아니었다. 콘크리트로 덮었다는 말은 다시 파내지 말라는 뜻으로 남은 이야기다.
2014년 4월 26일 발굴 때도 여러 종류의 게임이 나왔다. 퓨얼 엔터테인먼트는 그곳에서 나온 《E.T.》를 스미스소니언 미국사 박물관에 넘겼다. 앨라모고도 시의 일련번호가 붙은 카트리지다. 박물관에 남은 이 게임은 수요를 잘못 예상해 재고를 묻었던 일을 보여준다.
약 3천만 대가 남긴 게임 시장
VCS의 전체 판매량은 약 3천만 대로 알려져 있다. 기네스는 2,764만 대로 집계해 2세대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기로 기록했고 과학박물관과 디큐어는 3천만 이상으로 봤다. IEEE는 이미 1983년에 1,200만 대가 팔렸다고 전했다.
아타리는 본체를 팔고 여러 제작사는 새 게임을 보탰다. 사람들은 원하는 게임 때문에 본체를 샀다. 다만 공급과 품질을 관리하지 못하면 게임기 전체가 신뢰를 잃는다는 문제도 남겼다. 지금의 게임기 회사들도 같은 방식을 쓰되 관리를 더 강화했다.
한국에는 정식 출시 기록이 없다
한국의 정식 유통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군 기지와 병행수입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알려진 아타리 쇼크라는 말은 북미 게임 시장의 붕괴를 가리킬 뿐, 이 기기가 1970년대 한국 매장에서 팔렸다는 증거는 아니다.
1976년 채널 F가 먼저 판 교환식 카트리지를 VCS는 대중적인 게임 시장으로 키웠다.
1977년 가을 약 199달러 묶음에 조이스틱 두 개와 패들, 《컴뱃》이 들어 있었다.
MOS 6507과 RIOT 안의 128바이트로 화면 저장 공간 없이 15.24밀리초를 맞췄다.
1980년 3월 나온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본체 인기를 되살린 첫 밀리언셀러로, 모두 약 620만 개가 팔렸다.
액티비전과의 합의로 독립 게임 회사가 자리 잡았다. 《E.T.》는 붕괴 요인 중 하나였고 2014년 매립지에서는 여러 게임이 나왔다.
“The VCS was not doing that well—there were only a few million in the field, and it looked like it was dying—then Space Invaders came out, and bam! it exploded.” — 래리 캐플런, IEEE Spectrum, 1983년 3월
아타리 VCS는 먼저 나온 채널 F의 교환식 카트리지를 대중적인 게임 시장으로 키웠다. 인기 게임은 본체를 다시 팔리게 했고 독립한 개발자들은 새 게임 회사를 세웠다. 전체 판매량은 약 3천만 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게임과 제작사, 가정용 컴퓨터, 빗나간 수요 예측이 겹치며 1983년 시장이 무너졌다. 《E.T.》와 매립지는 그 실패의 일부였을 뿐 산업을 죽인 단독 범인은 아니다.
참고 자료
- Inventing the Atari 2600 (Design case history, Mar 1983)
- Design case history: the Atari Video Computer System
- Atari 2600 Video Computer System
- Best-selling second-generation videogame console
- Atari 2600 prototype X725.86
- VIDEO GAMES INDUSTRY COMES DOWN TO EARTH
- Atari Sends Warner Loss to $122 Million
- From landfill to Smithsonian collections: E.T. the Extra-Terrestrial Atari 2600 game
- Space Invaders – March 1980
- Activisionaries: How Four Programmers Changed The Game Industry
- Activision, Inc., was incorporated on October 1, 1979 (MIT Press chapter 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