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II, 완제품 안에 남겨 둔 여덟 칸
애플 II는 조립을 마친 컴퓨터였지만 안에는 부품을 더 꽂을 자리가 여덟 개 남아 있었다. 디스크와 비지캘크가 더해지자 취미로 쓰던 컴퓨터가 일을 위한 도구가 됐다. 플라스틱 케이스를 맡은 제리 매녹부터 회로를 만든 워즈니악까지, 그 바탕을 만든 사람들의 역할도 뚜렷했다.
1977년 4월 16일과 17일, 샌프란시스코의 첫 웨스트코스트 컴퓨터 페어에서 애플 II가 모습을 드러냈다. 베이지색 본체에 키보드와 전원 코드가 달려 있었다. 텔레비전을 연결하면 화면에 글자가 나오는 컴퓨터였다.
고객에게 제품을 보내기 시작한 날은 그해 6월 10일이다. 4KB 메모리를 넣은 조립품은 1,298달러에 팔렸다. 패들과 카세트 데모가 딸려 왔지만 모니터와 디스크 드라이브는 들어 있지 않았다. 애플 II가 완제품이라는 말은 본체의 조립을 마쳤다는 뜻이었다.
직접 조립할 일을 줄이다

The wub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 The wub · CC BY-SA 4.0
그전에는 개인용 컴퓨터를 사도 손수 조립해야 하는 일이 흔했다. 기판과 케이스를 구한 뒤 전원을 달고 선을 이어야 했다. 스티브 워즈니악도 1992년 인터뷰에서 다른 컴퓨터를 쓰려면 납땜하고 볼트를 조여야 했다고 회상했다. 조립을 즐기는 취미가와 달리 가정에서 쓰려는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애플 II에는 전자회로와 키보드, 전원공급장치가 함께 들어 있었다. 프로그램을 짜는 언어인 BASIC도 ROM에 담아 두었다. 사용자는 본체를 조립할 필요 없이 텔레비전을 화면으로 연결해 쓸 수 있었다. 화면과 저장장치는 여전히 밖에 따로 두는 구성이었다.
4월에 공개하고 6월에 보내다
흔히 4월의 페어 주말을 애플 II의 출시일로 적지만 고객에게 제품이 간 것은 두 달 뒤다. 컴퓨터 역사 박물관에 남은 행사 녹음에도 페어 날짜는 4월 16일과 17일로 나온다. 공개는 4월, 배송은 6월이었다.
처음 보낸 모델은 소리와 컬러 그래픽을 지원했다. 기본 메모리는 4KB였고 48KB까지 늘릴 수 있었다. 화면은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연결해 썼다.
High Technology 컴퓨터 가게의 당시 32초 광고를 팬이 다시 올린 영상이다. 내레이션은 ‘Introducing Apple 2… hook it up to your TV’. 애플 공식 채널의 영상은 아니다.
당시 컴퓨터 가게 광고도 텔레비전에 연결하라고 안내한다. 조립을 마친 본체를 사면 된다는 편리함과 화면은 따로 필요하다는 조건이 32초 안에 함께 담겼다.
회로와 케이스를 만든 사람들
워즈니악은 한 장의 보드에 6502와 컬러 회로, 확장 슬롯을 담았다. 그 보드 하나가 Integer BASIC과 카세트, 키보드까지 다뤘다. 스티브 잡스는 이 보드를 사람들이 사서 쓸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케이스를 설계한 사람은 제리 매녹이었다. 플라스틱을 틀에 넣어 모양을 만드는 사출 성형 방식이었다. 로드 홀트는 스위칭 전원공급장치를 설계했다. 잡스는 금속 상자 대신 플라스틱을 고집했지만 케이스를 직접 설계하지는 않았다. 설계는 매녹의 몫이었다.
워즈니악은 1992년 인터뷰에서 플라스틱 케이스와 조립을 마친 상태를 강조했다. 상자에서 꺼내 전원을 꽂고 설명서를 펴면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텔레비전을 연결하는 몇 분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텔레비전 신호로 만들어 낸 색
애플 II는 텔레비전이 색을 읽는 방식을 이용했다. 화면의 밝기를 나타내는 디지털 신호를 반복해서 보내면 컬러 텔레비전이 그 무늬를 색으로 받아들였다. 이를 엔티에스씨 아티팩트 컬러라고 한다. 고해상도 화면은 280×192였지만 색을 나타낼 때의 실제 해상도는 140×192 쪽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색을 마음대로 골라 칠할 수는 없었다. 나중의 컴퓨터처럼 화면의 색을 자유롭게 저장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박람회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끈 컬러 화면도 텔레비전 신호의 특성을 이용해 만든 결과였다.
중앙처리장치는 약 1MHz로 작동하는 MOS 6502였다. 글자는 한 줄에 40자씩 표시했고 프로그램은 카세트에 저장했다. 본체에 담긴 Integer BASIC은 이름 그대로 정수만 다루는 언어였다.
부품을 더 꽂는 여덟 슬롯

Steve Jurvetson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 Steve Jurvetson · CC BY 2.0
메인보드 위쪽에는 부품을 꽂는 50핀 확장 슬롯이 여덟 개 있었다. 주변기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 자리를 이용할 수 있었다. 스티브 저벳슨이 찍은 사진에서도 슬롯과 6502가 보인다. 원조 II와 II 플러스 계열의 구조이며, 뒤에 나온 IIc처럼 슬롯을 없앤 모델도 있었다.
조립이 끝난 제품이라고 해서 쓰는 과정까지 편한 것은 아니었다. 카세트로 프로그램을 불러오고 저장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본체를 사는 데 든 1,298달러 외에도 필요한 기기를 갖추는 비용을 생각해야 했다.
소수점 계산은 애플소프트부터
워즈니악은 1992년 인터뷰에서 애플 II가 정수만 다뤄 37.04 같은 수를 계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이크 마쿨라는 소수점이 있는 수도 계산하는 BASIC을 원했다. 카세트로 읽어 들이는 시간도 문제였다. 뒤에 더해진 애플소프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6502 BASIC이었다.
1977년 모델의 ROM에는 Integer BASIC이 들어 있었다. 애플소프트를 ROM에 기본으로 넣은 제품은 1979년 애플 II 플러스다. 처음부터 BASIC으로 프로그램을 짤 수는 있었지만 달러와 센트 단위의 돈 계산은 애플소프트가 들어온 뒤에 가능해졌다.

Akbkuku · Wikimedia Commons · CC BY 4.0 · Akbkuku · CC BY 4.0
사진 속 플러스에는 디스크 II 카드가 꽂혀 있고 홀트 방식의 스위칭 전원도 보인다. 처음 비워 둔 슬롯에 새 부품을 더해 쓰는 모습이다.
카세트 다음에는 디스크
1978년 6월, 디스크 II와 이를 쓰기 위한 애플 DOS가 고객에게 전달됐다. 워즈니악은 적은 수의 칩으로 플로피 디스크를 제어하는 회로를 설계했다. 셰퍼슨 마이크로시스템즈의 폴 로튼은 약 일곱 주 만에 DOS를 썼다. 느린 카세트 때문에 기다리던 불편도 이때부터 줄기 시작했다.

Rama & Musée Bol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fr · Rama & Musée Bolo · CC BY-SA 2.0 fr
본체 위에 디스크 II 두 대와 모니터 II를 올린 모습은 출시 뒤에 갖춰진 구성이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애플 II의 모습이지만 그만큼 비용도 늘었다. 1980년 공식 발표 자료를 보면 메모리와 주변기기를 갖춘 일반적인 구성의 가격은 1,850달러에서 5,000달러 이상이었다.
계산표 때문에 컴퓨터를 사다
1979년 댄 브리클린과 밥 프랭크스턴은 비지캘크를 애플 II용으로 먼저 내놓았다. 표 안의 숫자를 다시 계산하는 일을 자동으로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컴퓨터 역사 박물관은 비지캘크가 개인용 컴퓨터를 업무 도구로 바꾸고 애플 II 판매를 늘렸다고 설명한다.
이제는 컴퓨터를 산 뒤 쓸 곳을 찾는 대신 계산표를 쓰려고 컴퓨터를 샀다. 디스크를 연결하고 비지캘크를 쓰자 작은 회사에서도 애플 II를 업무에 활용했다. 더 빠른 칩으로 바꾸지 않아도 숫자를 거듭 계산하는 일을 컴퓨터에 맡길 수 있었다.
1980년 10월 31일까지 애플이 판매한 애플 II 본체는 약 13만 1,000대였다. 애플의 회계연도 매출도 1977년 약 77만 달러에서 1980년 1억 1,790만 달러로 커졌다.
Internet Archive 공식 채널에 올라온 레인 누니(Laine Nooney)의 2023년 7월 13일 강연 The Apple II Age. 애플 II를 돌아보는 후대 강연이다.
편해진 조립, 여전히 비싼 구성
애플 II의 강점은 케이스와 키보드, 전원을 한데 갖췄다는 데 있었다. 사용자는 BASIC으로 시작해 색과 소리를 다룰 수 있었다. 필요가 늘면 여덟 슬롯에 부품을 더했다. 워즈니악과 매녹, 홀트가 만든 부분들을 잡스가 하나의 제품으로 홍보하고 팔았다.
하지만 화면과 저장장치는 따로 필요했다. 카세트는 느렸고 기본 4KB 메모리도 넉넉하지 않았다. 색을 고르는 데도 제약이 있었다. 조립 부담은 줄었어도 원하는 만큼 기기를 갖추는 데 드는 돈과 불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 먼저 퍼진 복제 컴퓨터
한국에는 애플의 공식 정가표나 애플코리아라는 판매 창구가 없었다. 1980년경부터 청계천과 세운상가에서 만든 애플 II 복제기가 먼저 퍼졌다. 조동원의 연구는 원래 제품의 작동과 겉모습을 따라 만든 이 호환 컴퓨터들을 다룬다.
조동원의 연구에 따르면 1982년까지 대기업을 뺀 50여 개 중소업체가 애플 II 복제품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대부분 세운상가에 자리한 업체였다. 세운상가 4층은 서울의 애플거리로 불렸다. 경향신문 1982년 12월 28일자는 복제기가 30만원 내외에 거래됐다고 전한다.
1982년 삼보 트라이젬20도 이름이 남은 호환기다. 세운상가 제작사로는 석영전자와 홍익전자, 희망전자가 거론된다. 정품 유통에 앞서 복제기를 만들고 수리하며 부품을 다루던 사람들이 애플 II의 구조를 퍼뜨렸다.
새 부품을 더하며 오래 쓴 컴퓨터
애플 II는 사용자가 회로를 직접 조립하는 수고를 덜면서도 안에 부품을 더할 공간을 남겼다. BASIC으로 시작한 기계에 디스크와 비지캘크를 더하자 쓰임새가 넓어졌고 판매도 이어졌다. 다만 본체만 사는 가격과 필요한 기기를 모두 갖추는 가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워즈니악이 말한 시작은 간단했다. 상자에서 꺼내 전원을 꽂고 텔레비전을 연결하면 됐다. 그 뒤 무엇을 더할지는 사용하는 사람과 주변기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 새 부품을 받아들일 여덟 슬롯이 애플 II를 오래 쓰게 했다.
1977년 4월 16–17일 공개한 애플 II는 6월 10일 출하됐다. 4KB 본체 1,298달러에 화면과 디스크는 빠졌다.
워즈니악은 보드, 매녹은 케이스, 홀트는 전원을 설계했고 잡스는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들기를 고집했다.
엔티에스씨 신호로 색을 냈고 초기 언어는 Integer BASIC이었다. 애플소프트를 기본으로 넣은 모델은 1979년 II 플러스다.
1978년 6월 디스크 II와 DOS, 1979년 비지캘크가 나왔다. 1980년 10월 말까지 본체 약 13만 1,000대가 팔렸다.
한국에는 공식 정가 없이 약 30만원의 청계천·세운 복제기가 먼저 퍼졌다. 1982년 삼보 트라이젬20도 호환기였다.
“The Apple II was completely built, in a sense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a plastic case, you could just take it out of a box, plug it in a wall and open a manual, you have to attach it to your TV set, takes, you know, a few minutes.” — 스티브 워즈니악, 1992년 인터뷰
애플 II는 회로와 키보드, 전원을 한데 넣어 사용자의 조립 부담을 덜었다. 워즈니악은 보드를, 매녹은 케이스를, 홀트는 전원을 설계했고 잡스는 이를 플라스틱 제품으로 팔았다. 처음에는 적은 메모리와 느린 카세트가 발목을 잡았지만 디스크 II와 비지캘크가 쓰임새를 넓혔다. 여덟 슬롯은 새 부품을 더할 자리가 됐다. 다만 화면과 주변기기까지 갖추려면 본체 가격보다 많은 돈이 필요했다.
참고 자료
- June 10: Apple II Shipped Today
- The Apple II — CHM Revolution
- The Computer History Museum Makes Historic Apple II DOS Source Code Available to the Public
- Software & Languages — VisiCalc
- West Coast Computer Faire 1977 session tape
- The Machine That Changed The World; Interview with Steve Wozniak, 1992
- A look back in IPO: Apple
- Vernacular Technical Practices Beyond the Imitative/Innovative Boundary: Apple II Cloning in Early-1980s South Korea
- 조동원 — 청계천 전자상가, 복제의 기술문화, 디지털문화의 형성 (IDI 도시연구 11,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