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킨토시, 무대에서 인사한 기계는 시험용이었다
가방에서 나와 인사한 매킨토시는 매장에서 팔던 모델보다 메모리가 많았다. 500달러 컴퓨터 계획부터 이사회가 막으려 한 광고까지, 익숙한 발표 장면 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1984년 1월 24일, 스티브 잡스가 캔버스 가방에서 베이지색 매킨토시를 꺼냈다. 장소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드앤자 칼리지 플린트센터였다. 애플이 그날 발표한 가격은 2,495달러. 작은 본체에 9인치 흑백 화면을 담고 마우스를 함께 주는 컴퓨터였다.
이 발표를 떠올리면 컴퓨터가 건넨 인사와 '1984' 광고가 먼저 생각난다. 그런데 무대에서 말한 기계는 매장에서 팔던 모델과 메모리부터 달랐다. 광고도 슈퍼볼에서 딱 한 번 방송된 것은 아니었다. 매킨토시가 만들어진 과정을 따라가면 익숙한 장면 뒤에 가려진 사정이 드러난다.
명령어 대신 아이콘을 누르다
1984년에도 개인용 컴퓨터를 쓰려면 명령어를 외워야 했다. 사용자가 정해진 문법대로 글자를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매킨토시는 아이콘을 마우스로 눌러 쓰는 그래픽 화면, 곧 GUI를 갖췄다. 컴퓨터역사박물관은 이런 방식으로 처음 성공을 거둔 개인용 컴퓨터로 매킨토시를 꼽는다.
BYTE 1984년 2월호의 그렉 윌리엄스는 마우스와 창, 바탕화면을 쓰는 기술을 2,500달러 미만에 내놓았다고 소개했다. 애플의 출시 가격은 2,495달러였다. 9인치 화면은 512×342개의 점으로 글자와 그림을 보여 줬다.

Sailko · Wikimedia Commons · CC BY 3.0 · Sailko · CC BY 3.0
본체와 화면을 한데 묶은 모습은 가전을 닮았다. 옆에는 숫자 키패드가 없는 키보드와 버튼 하나짜리 마우스가 놓였다. 책상에 내려놓고 바로 쓰도록 만든 외형이다.
500달러 컴퓨터로 시작한 계획
제프 라스킨은 1979년 애니(Annie)라는 암호명으로 매킨토시 개발을 시작했다. 그가 만들려던 것은 글자를 중심으로 쓰는 값싸고 쉬운 컴퓨터였다. 목표 가격은 500달러였지만, 나중에 실제로 나온 매킨토시(모델 번호 M0001)는 처음 구상과 달라졌다.
리사 개발에서 밀려난 잡스가 1981년 1월 무렵 매킨토시를 맡으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라스킨은 그해 2월 강제 휴직에 들어갔고 1982년 애플을 떠났다. 제품에는 라스킨이 붙인 이름과 잡스의 구상이 함께 남았다. 개발자 앤디 허츠펠드는 잡스를 매킨토시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라스킨의 설명에 따르면 이름은 그가 좋아한 사과 품종 매킨토시(McIntosh)에서 땄다. 오디오 회사 매킨토시 랩과 겹치지 않도록 철자를 Macintosh로 바꿨지만 발음은 같았다. 애플의 1982년 상표 신청도 그 때문에 거절됐다. 잡스가 그해 11월 16일 고든 가우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도 상대 회사 고문은 거절을 권했다.
애플은 1983년 3월 말 이름을 쓸 권리를 얻고 1986년 상표를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거래 금액으로 알려진 현금 10만 달러에 대해서는 매킨토시 랩 고문이 실제와 크게 다르다고 밝혔다.
리사에서 가져오고 덜어낸 것
매킨토시에 앞서 애플은 1983년 1월 19일 리사를 내놓았다. 가격은 9,995달러였다. 컴퓨터역사박물관의 한센 슈는 리사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매킨토시도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매킨토시는 리사의 화면을 그리던 프로그램인 빌 앳킨슨의 퀵드로우를 그대로 가져왔다. 같은 68000용 코드를 쓰기 위해 프로세서도 68000을 골랐다. 대신 하드디스크와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기능을 빼고 RAM을 128KB로 줄였다. 이렇게 가격을 2,495달러에 맞췄다. 잡스도 BYTE 인터뷰에서 리사 기술로 아주 싼 컴퓨터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품을 줄였어도 처리 속도까지 낮춘 것은 아니었다. BYTE가 소개한 클럭, 곧 프로세서의 동작 속도는 매킨토시가 7.83MHz, 리사가 5MHz였다. 매킨토시는 리사의 그래픽 기술을 쓰면서 저장 공간과 동시 작업 기능을 덜어내 값을 낮춘 기계였다.
제록스 방문 전에 세운 화면 구상
1979년 애플 팀은 제록스 PARC를 두 번 방문했고 잡스는 두 번째에 갔다. 라스킨이 방문을 마련한 까닭은 이미 진행하던 작업의 가치를 잡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스탠퍼드 매킨토시 아카이브는 제록스에서 기술을 훔쳐 왔다는 식의 이야기가 거의 모든 면에서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그해 가을의 Book of Macintosh에는 이미 쓰기 쉬운 화면에 관한 계획이 있었다. 점을 모아 그림을 만드는 비트맵 방식, 여러 글꼴, 그림을 이용한 입력도 담겼다. 라스킨의 연대기에서도 개발 승인은 PARC 방문보다 먼저다. 방문이 개발에 속도를 더했을 수는 있어도 화면 구상은 그 전에 나와 있었다.
래리 테슬러는 당시 잡스가 금광 위에 앉아 있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빌 앳킨슨은 비트맵과 서로 겹치는 창은 이미 있었고 PARC의 도움은 그 뒤였다고 설명했다. 앳킨슨의 설명대로라면 애플이 제록스의 스몰토크를 통째로 베꼈다는 이야기는 맞지 않는다.
닫힌 본체와 모눈종이 위의 아이콘
매킨토시에는 128KB RAM과 64KB ROM, 모토로라 68000이 들어갔다. 파일은 3.5인치 400KB 플로피에 담았다. 외부 기기를 연결하는 RS-232C/RS-422 단자 두 개와 외장 플로피용 단자와 오디오 기능은 있었지만 안에 부품을 꽂는 확장 슬롯은 없었다.
확장 슬롯을 없애자는 라스킨의 생각을 잡스도 이어받았다. BYTE 인터뷰에서 개발팀은 슬롯을 넣으면 비용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사용자가 뚜껑을 열어 부품을 더하는 일보다 완성된 컴퓨터를 그대로 쓰는 쪽에 무게를 둔 설계였다.

Marcin Wichary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 Marcin Wichary · CC BY 2.0
개발팀은 평소 보이지 않는 케이스 안쪽에도 흔적을 남겼다. 잡스와 앳킨슨, 허츠펠드, 브루스 혼, 라스킨의 서명을 본체를 찍어 내는 틀에 새겼다. 허츠펠드가 Signing Party라는 이름으로 기록한 일이다.
수잔 케어는 모눈종이로 화면의 아이콘을 그렸다. 한 칸을 화면의 점 하나로 삼아 32×32 크기에 맞췄다. 그가 만든 시스템 글꼴 시카고는 처음에 엘레폰트라고 불렸다. 세로선과 가로선, 45도 선만 썼으며 대문자 높이는 아홉 픽셀이었다. 허츠펠드가 케어를 찾아간 때는 흔히 1982년으로 알려져 있고, 케어는 1983년 애플에 합류했다.
SFMOMA에는 케어의 1982년 아이콘 스케치와 이후의 Graphic Icons 시트가 남아 있다. 종이의 작은 칸을 채우며 컴퓨터 화면을 디자인한 과정을 보여 주는 작업물이다.

Benoît Prieur · Wikimedia Commons · CC0 · Benoît Prieur · CC0
프라하 애플 뮤지엄의 본체 사진에는 손잡이 홈도 보인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이 기계는 첫 매킨토시이며, 뒤에 128K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렸다.
방송을 막을 뻔한 이사회의 반대
치아트/데이의 헤이든, 토머스, 클로가 만들고 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1984' 광고는 애플 이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하마터면 방송되지 못할 뻔했다. 마이크 마쿨라는 광고 대행사를 바꾸자고 했고 존 스컬리는 사 둔 슈퍼볼 광고 시간 두 개를 모두 되팔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제이 치아트는 30초짜리만 팔았고 60초짜리는 남겼다.
2024년 인터뷰에서 스컬리는 이사회가 '설마 그걸 진짜 내보낼 생각은 아니겠지'라고 물었다고 회상했다. 헤이든도 마쿨라가 머리를 감싸 쥔 채 다른 대행사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허츠펠드의 기록에도 광고를 싫어한 이사회의 반응이 담겨 있다.
팬이 다시 올린 리들리 스콧의 60초 광고 영상이다. 애플 공식 HD 원본은 아니며 광고 저작권은 애플에 있다.
광고는 1984년 1월 22일 슈퍼볼 XVIII 3쿼터에 전국으로 방송됐다. 그보다 먼저 광고상 응모 자격을 갖추려고 아이다호 트윈폴스의 KMVT 등 작은 지역 방송에 내보냈다. 유명한 슈퍼볼 방송이 유일한 방송은 아니었다.
무대에서 인사한 기계는 512K
1월 24일 주주총회에서 잡스는 밥 딜런을 인용한 뒤 가방 속 매킨토시를 꺼냈다. 이어 컴퓨터에서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Hello, I am Macintosh. It sure is great to get out of that bag." 스티브 헤이든이 대사를 썼고 마크 바턴의 SAM을 쓰는 매킨토크가 목소리를 냈다. 잡스는 매킨토시를 insanely great라고 불렀다. 행사장에서는 '1984' 광고도 상영했다.

Bernard Gotfryd (edit: W.carter)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 Bernard Gotfryd; TIFF edit W.carter; later color pass on Commons · Public domain
유명한 두 문장은 더 긴 인사말의 시작이었다. 허츠펠드는 자신의 메모와 스콧 내스터의 회의 테이프로 전체 대사를 남겼다. 시연에 쓰인 가방 그림은 수잔 케어가 그렸다. 앞서 흐른 차리오츠 오브 파이어는 매킨토시가 낸 소리가 아니라 CD로 튼 음악이었다.
팬이 올린 발표 영상에서 가방과 Hello 장면을 발췌했다. 애플·허츠펠드·컴퓨터역사박물관의 공식 채널 영상은 아니다.
무대에 오른 것은 512K 시험용 기기 두 대 중 한 대였다. 매장에서 팔던 128K보다 메모리가 많은 기계였다. 허츠펠드는 이 선택을 속임수라고 표현했지만, 개발팀이 이미 128KB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객에게 인사한 기계와 그날 가격을 발표한 제품은 메모리 용량이 달랐다.
큰 기대와 작은 화면
BYTE 2월호에서 윌리엄스는 매킨토시를 지난 5년간 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같은 호에서 잡스는 리사 기술을 싼값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새 기술을 향한 찬사 옆에는 비용을 줄이려는 개발팀의 선택이 있었다.
뉴욕타임스의 에릭 산드버그디먼트는 화면을 '왜소한 5×7인치 보는 면'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같은 리뷰에서 IBM PCjr 때와 달리 매킨토시의 출시는 혁명을 예고한다고 썼다. 9인치 화면이 작다는 불만과 새 컴퓨터에 대한 기대가 함께 담긴 평가였다.
한국은 초기 출시 목록에서 빠졌다
카탈로그는 매킨토시 128K를 국내 미출시 제품으로 분류한다. 애플의 1984년 1월 24일 발표에는 영국,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호주가 먼저 이름을 올렸다. 이 다섯 나라에는 석 달 안에, 나머지 나라에는 일 년 안에 각 나라에 맞춘 제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었다. 한국은 그 목록에 없었다.
애플코리아가 이 모델을 정식으로 들여왔다는 기록이나 당시 국내 수입사 광고도 찾지 못했다. 다만 이것만으로 한국에 들어온 기기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식 판매망을 거치지 않은 병행수입 가능성은 남아 있다.
사람이 컴퓨터를 다루는 방식
라스킨의 500달러 컴퓨터 계획은 잡스가 맡은 뒤 2,495달러짜리 매킨토시로 달라졌다. 리사에서 가져온 퀵드로우, 확장 슬롯 없는 본체, 모눈종이에 그린 아이콘이 한 제품에 모였다. 개발은 제록스 방문 전부터 시작됐고 광고와 발표 무대에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와 다른 사정이 있었다.
애플 발표에 실린 분석가 진 예이츠의 연간 35만 대는 판매 예상치였다. 실제 판매량을 뜻하는 숫자는 아니다. 매킨토시가 남긴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이 컴퓨터 화면을 보고 조작하는 방식에 있다.
1984년 1월 24일 출시된 매킨토시는 2,495달러였고 RAM 128KB, 9인치 512×342 화면에 마우스가 딸려 왔다.
1979년 라스킨의 값싼 컴퓨터 구상은 잡스를 거쳐 리사 기술을 담은 제품으로 달라졌다.
1979년 가을 문서에는 이미 쓰기 쉬운 그래픽 화면 구상이 있었고 PARC 방문은 그 뒤였다.
'1984' 광고는 슈퍼볼 전국 방송에 앞서 광고상 응모를 위해 KMVT 등에서 먼저 방송됐다.
발표 무대의 인사는 512K 시험용 기기로 들려줬고 헤이든이 대사, 바턴의 SAM이 음성을 맡았다.
"Macintosh is a really cheap implementation of Lisa's technology." — 스티브 잡스, BYTE 1984년 2월호 디자인팀 인터뷰
매킨토시의 쓰기 쉬운 화면 구상은 1979년 제록스 PARC 방문 전부터 있었다. 잡스는 리사 기술을 가져오되 하드디스크와 동시 작업 기능을 빼고 메모리를 줄여 2,495달러짜리 컴퓨터를 내놓았다. 유명한 광고는 슈퍼볼 이전에도 방송됐으며, 무대의 인사에는 512K 시험용 기기를 썼다. 매킨토시가 남긴 변화는 컴퓨터를 보고 다루는 방식에 있다.
참고 자료
- Apple Introduces Macintosh Advanced Personal Computer (24 January 1984 press release)
- BYTE Magazine Vol. 09 No. 02 (February 1984) — Williams preview + Lemmons design-team interview
- 1984 — Andy Hertzfeld, folklore.org
- The Times They Are A-Changin' — Hertzfeld
- It Sure Is Great To Get Out Of That Bag! — Hertzfeld
- The Xerox PARC Visit — Stanford Mac archive
- The Lisa: Apple's Most Influential Failure — Hansen Hsu, CHM, 19 Jan 2023
- Timeline of Computer History: 1984 — Computer History Museum
- Hardware Review: Apple Weighs In With Macintosh — Erik Sandberg-Diment, NYT 24 Jan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