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보이와 게임기어, 색보다 오래 가는 힘
컬러 화면을 만들 기술이 있었는데도 요코이 군페이는 흑백 게임보이를 골랐다. 세가는 이듬해 화면 뒤에 조명을 넣은 컬러 게임기어를 내놓았다. 두 회사가 무엇을 먼저 생각했는지는 화면을 켤 때와 건전지를 갈 때 드러났다.
닌텐도가 1989년 4월 21일 일본에 내놓은 게임보이 DMG-01은 단3 건전지 네 개로 움직였다. 회색 몸체에는 네 단계 회색으로 표현하는 160×144 화면이 달렸고 화면 뒤를 밝히는 조명은 없었다. 같은 해 7월 31일 북미에서도 89.95달러에 판매를 시작했다.
흑백 화면은 요코이 군페이가 일부러 고른 것이었다. 컬러 기술은 이미 있었지만 그는 배터리와 게임을 먼저 생각했다. 세가는 1990년 10월 6일 게임기어를 내놓으며 다른 길로 갔다. 19,800엔짜리 기기에 3.2인치 컬러 화면과 조명을 넣었다. 대신 단3 여섯 개를 넣고도 약 3~4시간마다 건전지를 갈아야 했다.
게임을 갈아 끼우며 들고 다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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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보이는 거실용 게임기처럼 카트리지를 갈아 끼우면서 밖에서도 즐기는 기계였다. 미국 국립미국사박물관은 이를 NES의 카트리지 방식과 게임&워치의 휴대성을 합친 제품으로 소개한다. 한 가지 게임만 하는 전자 장난감에서 벗어나 손바닥 크기 기계로 여러 게임을 즐기게 된 셈이다.
닌텐도는 화면을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건전지로 움직이고 들고 다니기 좋은 크기로 만드는 데 힘을 썼다. 일본에서 처음 팔 때는 상자에 게임이 들어 있지 않았다. 북미의 89.95달러짜리 상자에는 테트리스가 함께 들어 있었다. 같은 게임보이라도 나라에 따라 상자 속이 달랐다.
컬러 기술을 두고 흑백을 고른 이유
요코이는 1997년 모리카와 유키히토와의 인터뷰에서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The technology was there to do color. But I wanted us to do black and white anyway." 컬러 기술이 있었어도 흑백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뜻이다. 그는 배터리와 소프트웨어부터 생각했다. 기계를 설계할 때부터 게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칠판에 눈사람을 그릴 때 흰 분필이면 충분하다는 비유를 들었다. 경쟁사가 컬러 기기를 만든다는 말을 듣고는 "Then we're fine."이라고 답했다. 색을 넣으려면 그만큼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인터뷰의 "Hardware design isn't about making the most powerful thing you can."이라는 말도 그 생각과 통한다.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기를 만드는 것이 하드웨어 설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요코이의 생각을 소개할 때 자주 쓰는 '고갈된 기술의 수평 사고'(枯れた技術の水平思考)는 『요코이 군페이 게임 하우스』에 나오는 구호다. 흑백을 고른 이유를 말한 1997년 인터뷰와는 별개의 기록이다.
컬러 화면에 든 돈, 19,8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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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의 사토 히데키는 이제 흑백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히토쓰바시 IIR 인터뷰 기록에 따르면 컬러 액정 한 장 값만 4,500~4,600엔이었다. 화면을 밝히는 조명과 빛을 고르게 퍼뜨리는 판은 시티즌 제품을 썼다. 게임기어는 초기 게임보이의 12,500엔보다 비싼 19,800엔에 팔렸지만 사토는 그 가격에도 이익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게임기어는 Z80A 3.58MHz를 쓰고 4,096색 가운데 32색을 게임에 표시했다. 이 화면을 켜는 건전지는 단3 여섯 개였다. C형 건전지가 아니다. 가로로 긴 검은 몸체에 파란 START 버튼이 달린 이 기계를 매장에서 켜 놓으면 어느 쪽이 더 현대적으로 보이는지는 분명했다.
같은 해상도, 다른 밝기
화면의 점 수는 둘 다 160×144였다. 하지만 게임보이의 STN 액정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아 어두운 곳에서 별도 램프가 필요했다. 게임기어는 화면 뒤에 조명이 있어 어두운 방에서도 쓸 수 있었다. 사양표의 해상도가 같아도 실제로 손에 쥐고 쓰는 조건은 이렇게 달랐다.
밥 스트라우스는 1991년 11월 22일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구매 가이드에서 게임보이에 B-를 줬다. 주요 휴대용기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작지만 게임이 복잡해질수록 작은 흑백 화면이 아쉽다고 했다. 게임기어는 A를 받았다. 컬러와 넉넉한 화면, 합리적인 가격에 오래 쥐고 있기 편한 조작까지 장점으로 꼽혔다. 다만 즐길 게임이 아직 적었다.
단3 네 개와 여섯 개의 사용 시간
게임보이를 얼마나 오래 쓰느냐는 안내마다 차이가 크다. 닌텐도 영국은 약 15시간, 스미소니언이 소개한 미국사박물관 큐레이터 드류 로바지는 10~14시간이라고 했다. 나중에 고쳐 쓴 닌텐도 일본 안내에는 알칼리 단3 네 개로 약 35시간이라고 적혀 있다. 이 숫자를 묶어 15~30시간이라고 하면 서로 다른 설명을 섞게 된다. 닌텐도 영국 안내에 적힌 무게는 배터리를 넣어 약 300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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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보이 기판의 큰 칩에는 DMG-CPU B와 1989년 닌텐도 일본이라는 글자가 있다. 닌텐도와 샤프가 맞춤 제작한 칩으로, PC엔진의 허드슨이 만들었다는 설과 맞지 않는다. 기판에는 4.194304MHz 크리스탈과 샤프 LH5164N-10L 메모리도 보인다. 미국사박물관 카드의 '8-bit Z80 processor'는 칩의 계열을 가리키는 설명이다. 이를 질로그에서 만든 부품의 번호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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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어는 사용 시간이 훨씬 짧았다. 세가는 단3 여섯 개로 약 3~4시간을 안내했고 사토는 약 3시간, 추운 곳에서는 약 2시간이라고 말했다. 기판 가운데 붙은 백라이트 컬러 액정이 배터리를 소모했다. 여분 건전지를 여행 가방에 챙겨야 하는 기계와 며칠씩 배터리를 잊고 쓰는 기계는 들고 다닐 때부터 달랐다.
북미 상자에 테트리스를 넣은 까닭
테트리스와 링크 케이블, 휴대성을 소개하는 북미 출시 광고. 팬이 다시 올린 1989년 방송 영상이다.
헹크 로저스는 미노루 아라카와에게 《슈퍼 마리오 랜드》 대신 테트리스를 함께 팔자고 설득했다. 폴리곤의 2019년 회고에는 그의 말이 남아 있다. "If you want little boys to buy your Game Boy, then include Mario. But if you want everyone to buy your Game Boy, then include Tetris." 어린 소년뿐 아니라 모두에게 팔고 싶다면 테트리스를 넣으라는 뜻이었다. 테트리스가 든 상자는 북미용이었고 일본 첫 판매 때는 게임을 함께 넣지 않았다.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마케터 돈 코이너는 들고 다니기 편한 점, 서로 겨루는 재미, 좋은 게임을 핵심으로 꼽았다. 그는 1989년 미국용 100만 대가 모두 팔렸다고 회고했다. 한편 조명이 없는 화면 때문에 광고 촬영에는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게임기어는 그보다 늦은 1991년 4월 북미에 149.99달러로 나왔다. 매장에서는 컬러 화면이 눈에 띄어도 집에 가져간 뒤에는 건전지 여섯 개를 갈아 넣는 비용이 따랐다.
마스터 시스템 게임과 TV 방송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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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어에도 게임을 갈아 끼우는 카트리지 슬롯이 있었다. 사토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마스터 시스템 게임을 돌리는 변환 어댑터도 팔렸다. 이미 나온 세가 게임을 휴대용 기기에서 즐기는 방법이었다. 닌텐도가 전용 게임을 늘려 가던 방식과는 달랐다. 어댑터로 쓰는 게임이 있어도 게임기어 전용 게임은 적었고 당시 잡지도 이를 약점으로 꼽았다.
따로 파는 TV 튜너 팩을 꽂으면 게임기어를 휴대용 텔레비전으로도 쓸 수 있었다. 튜너에는 안테나가 달려 있고 UHF/VHF 눈금과 SEGA GAME GEAR TV TUNER라는 이름이 찍혀 있다. 게임 밖으로 컬러 화면의 쓰임을 넓힌 액세서리였다. 다만 NTSC/PAL 아날로그 방송용이어서 디지털 전환 뒤에는 이 안테나로 방송을 잡을 수 없다.
판매량을 셀 때 함께 묶인 기기들
닌텐도의 누적 판매 실적에 나오는 1억 1,869만 대는 초대 DMG-01만 센 숫자가 아니다. 게임보이 컬러까지 더한 전체 제품군의 실적이다. 2006년 연차보고서도 2000년에 1억 대를 넘겼다고 설명한다. 그 뒤에 나온 기기와 판매 기간을 모두 합친 만큼 이 숫자를 초대 게임보이의 성적으로 보면 안 된다.
게임기어 약 1,400만 대는 사토의 1998년 인터뷰에 나온다. 해외 컨버터와 국내를 합친 숫자라는 설명이 붙으며 세가의 공식 실적 자료와는 구별해야 한다. 세가는 비즈니스와이어를 통해 1994년 연말 휴대용 시장에서 판매 금액 기준 53퍼센트를 차지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게임기어도 적지 않은 사람이 샀지만 두 초대 기기의 판매를 1억 1,869만 대라는 숫자로 견주기는 어렵다.
한국의 미니컴보이와 핸디겜보이
한국에서는 게임보이가 현대전자 미니컴보이로 팔렸다. 게임기어는 삼성 핸디겜보이 SPC-150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왔다. 일본에서 처음 나온 때와 한국에 들어온 때는 서로 달랐다.
매일경제 1991년 8월 10일자에는 현대전자의 미니컴보이 특별 판매 소식이 실렸다. 11일부터 20일까지 20퍼센트 할인한다는 내용이다. 적어도 그 무렵에는 매장에서 팔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짧은 기사로는 출시 날짜나 정가까지 알 수는 없다.
게임동아의 회고와 하드코어 게이밍 101은 핸디겜보이의 정가를 19만 8천 원으로 소개한다. 게임동아의 회고에는 SPC-150V 상자와 건전지 여섯 알로 약 3시간 쓴다는 설명, TV 튜너와 후속 핸디알라딘보이 이야기가 나온다. 하드코어 게이밍 101의 수집 자료는 미니컴보이를 1990년 11월 9만 9천 원, 핸디겜보이를 1991년 1월로 정리한다. 당시 출시 광고가 아닌 후대 자료에 남은 날짜와 가격이다.
게임보이가 이겼지만 남은 것은 컬러 화면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가 소개하는 2024년 교토 우지 오구라의 닌텐도 뮤지엄.
닌텐도는 1996년 7월 21일 게임보이 포켓을, 1998년 10월 21일 게임보이 컬러를 내놓았다. 흑백으로 시작한 게임보이도 후속 모델에서 색을 받아들였다. 2024년에는 교토 우지 오구라의 옛 공장 자리에 닌텐도 뮤지엄을 열었다. 공식 소개 영상에 나오는 곳도 이 건물이다.
게임보이가 이긴 것은 흑백 화면이 더 좋아서가 아니었다. 가격과 배터리, 북미의 테트리스, 오랫동안 쌓인 게임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게임기어는 밝은 컬러 화면을 먼저 보여 줬지만 당시에는 건전지 비용이 부담이었다. 나중에 휴대용 기기의 기본이 된 것은 백라이트 컬러 화면이었다. 닌텐도는 오래 쓰는 기기로 시장을 차지했고 세가는 미래의 화면을 한발 먼저 보여 줬다.
게임보이 DMG-01은 단3 네 개로 움직였으며 북미에서는 일본과 달리 테트리스를 상자에 함께 넣었다.
요코이는 컬러 기술이 있는데도 흑백을 골랐다. '고갈된 기술의 수평 사고'는 인터뷰가 아니라 『요코이 군페이 게임 하우스』의 구호다.
게임기어는 단3 여섯 개로 3.2인치 백라이트 컬러 화면을 켰으며 공식 사용 시간은 약 3~4시간이었다.
게임보이 사용 시간은 안내에 따라 약 15시간, 10~14시간, 약 35시간으로 달라 한 범위로 묶기 어렵다.
게임보이 1억 1,869만 대는 컬러까지 합친 실적이고 게임기어 약 1,400만 대는 컨버터를 포함한 사토의 인터뷰 수치다.
"그 사람이 컬러라고 하길래, 나는 '그러면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 요코이 군페이, 모리카와 유키히토와의 1997년 인터뷰
게임보이가 이긴 것은 흑백이 컬러보다 나아서가 아니었다. 닌텐도는 배터리와 게임을 먼저 생각했고 세가는 밝은 컬러 화면을 택했다. 게임보이는 북미에서 함께 팔린 테트리스와 차곡차곡 늘어난 게임에 힘입어 시장에서 앞섰다. 다만 1억 1,869만 대는 초대 게임보이만의 성적이 아니라 컬러까지 합한 판매량이다. 게임기어 약 1,400만 대도 사토의 인터뷰에 나온 숫자로 집계 범위가 다르다. 시장에서는 게임보이가 이겼지만 이후 휴대용 기기에 자리 잡은 화면은 게임기어가 먼저 택한 백라이트 컬러였다.
참고 자료
- ゲームボーイ(DMG-01)ハードウェア紹介
- Game Boy | Hardware | Nintendo UK
- 連結販売実績数量の推移 (Historical dedicated hardware units)
- Nintendo Annual Report 2006
- ゲームギア|セガ SEGA ハード大百科
- Hideki Sato oral history (Hitotsubashi IIR)
- Gunpei Yokoi × Yukihito Morikawa – 1997 Interview
- Thirty Years Ago, Game Boy Changed the Way America Played Video Games
- Game Boy |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
- How Nintendo introduced the Game Boy, Tetris, and Pokémon to the West
- Video game consoles — A guide to the video game systems currently available
- Requiem for a Game Gear
- 게임기 할인 판매 (매일경제 1991-08-10)
- A History of Korean Gaming — Licensed consoles appendix
- 애증의 휴대게임기! 세가 게임기어(핸디겜보이)를 추억해보자
- Nintendo Museum | Nintendo (Uji Ogura, Ky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