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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첫 CDMA 폰 SCH-100, 최초는 아니었다

아무도 전국 규모로 켜본 적 없는 CDMA를 한 나라가 통신망 전체에 채택했다. 삼성전자가 그 표준으로 처음 만든 휴대전화가 SCH-100이다. 이름 앞에 오래 붙어 다닌 ‘최초’라는 말부터 하나씩 맞춰 본다.

삼성 첫 CDMA 폰 SCH-100, 최초는 아니었다

1995년 6월, 서울 시내를 달리던 기자단 버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이동통신 서정욱 사장이었다. 스피커에는 CDMA 전화기 한 대가 물려 있었고, 사장은 버스에 탄 기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충청투데이는 이 장면을 ‘달리는 버스에서의 CDMA 깜짝쇼’라고 썼다. 감도를 묻자 답이 돌아왔다. “깨끗하고 선명한데요. 유선전화 같네요. 디지털이니까 마치 기계음 같기도 하고…”

승용차와 셔틀버스를 오간 그 통화는 이동 내내 한 번도 끊기지 않았다. 같은 날 코엑스 전시관에서는 경상현 정보통신부 장관이 전시장 주위를 도는 차 안의 사람과 통화하는 시연도 따로 열렸다. 시연에 나선 사업자는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이었다. 날짜는 6월 12일이라는 자료와 6월 9일이라는 자료로 갈린다.

그날 스피커를 타고 나온 목소리는 코드분할다중접속, 줄여서 CDMA라는 방식으로 전달됐다. 여러 통화를 같은 주파수에 겹쳐 보내고 통화마다 붙인 코드로 가려내는 기술이다. 퀄컴이 설계했지만 그때까지 어느 나라도 전국 규모 서비스망에서 켜본 적이 없었다. 삼성전자 SCH-100은 그 위에서 실제로 통화가 되게 만든 과정의 끝에 놓인 물건이고, 이 전화기에 흔히 따라붙는 수식어 하나는 사실과 어긋나 있다.

표준을 정하지 못한 채 흘러간 몇 해

한국의 이동전화는 1988년 7월 1일 한국이동통신의 AMPS 아날로그 서비스로 시작했다. 8년이 지난 1996년 4월까지도 아날로그 가입자는 약 180만 명, 보급률로는 4% 남짓이었다고 통신전문지 RCR Wireless가 썼다. 아날로그는 한 주파수에 한 통화를 얹는 구조여서 가입자가 늘자 주파수가 먼저 바닥났다. 어떤 방식을 고르느냐에 따라 앞으로 세울 기지국 수가 달라졌다.

1993년 초, 답은 두 갈래로 갈렸다. 체신부는 CDMA가 앞선 기술이라는 점을 들었고 상공자원부는 수출에 유리하다며 TDMA를 밀었다. CDMA는 아직 아무도 완성하지 못한 방식이었고 TDMA는 이미 시장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있는 기술을 따라갈 것인가, 아직 없는 기술을 먼저 만들 것인가. 부처 싸움처럼 보이는 대립 밑에는 그 노선 차이가 있었다.

ETRI가 처음부터 CDMA를 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원래 목표는 TDMA였고, 방향이 바뀐 것은 1990년 11월 연구책임자가 미국 출장에서 퀄컴의 CDMA를 보고 온 뒤였다. 디인베스터에 따르면 CDMA 컨소시엄은 1986년 ETRI 주도로 시작됐고 현대전자와 맥슨전자도 참여했다. 한국의 CDMA 도입은 어느 날의 결단이라기보다 몇 해에 걸쳐 방향을 튼 결과에 가까웠다.

전권을 쥔 사람들

1993년 7월 말, 윤동윤 체신부 장관의 지시로 경상현 차관이 KIST 서정욱 원장을 찾아가 CDMA 개발사업단장을 맡아 달라고 청했다. 서정욱은 수락했고 전권에 가까운 권한으로 사업을 끌고 갔다. 청한 쪽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경상현은 MIT 공학박사로 AT&T 벨연구소를 거쳐 ETRI 소장을 지낸 뒤 체신부 차관이 됐고, CDMA 도입을 결정한 것도 그 시절이었다.

연구 조직은 1992년에 벌써 불어나 있었다. 양승택 ETRI 원장은 연구인력 300여 명 증원을 건의해 정원을 1,750명에서 1,890명으로 늘리고 CDMA 전용 연구동도 얻어 냈다. 사람과 건물은 갖췄지만 성공을 확신하지는 못했다.

판은 이미 커져 있었다. 1994년 2~3월 포항제철과 코오롱이 주축이 된 신세기통신이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뽑혔고, 새 사업자에게도 같은 표준이 적용될 참이었다. 개통 시한이 정해졌고 연구진은 그 안에 개발을 끝내야 했다.

퀄컴과 갈라선 여름

공동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1993년 7월, 교환방식을 두고 퀄컴은 데이터를 잘게 나눠 보내는 패킷교환을, ETRI는 통화마다 길을 하나씩 잡아 두는 회선교환을 주장하며 맞섰다. 교환방식이 갈리면 교환기 설계 전체가 갈리고, 국산화해 둔 TDX-10 교환기를 그대로 쓸 수 있느냐도 함께 갈린다.

1993년 8월, ETRI는 퀄컴의 도면을 더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상위 설계서만 쥔 채 하위 설계를 스스로 밀고 나갔다. 전자신문에 따르면 양승택 원장은 이 무렵 결별을 선언했다. 퀄컴의 요구를 다 맞추다가는 약속한 기간 안에 서비스를 시작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기술을 사 온 쪽이 판 쪽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한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연단에 선 정장 차림의 어윈 제이컵스가 손짓하며 연설하는 모습
퀄컴을 세운 어윈 제이컵스가 2005년 UC 샌디에이고 행사 연단에서 연설하고 있다.

Dananderson at English Wikipedia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퀄컴이 빠진 자리는 제조사가 메웠다. 같은 전자신문 기록에 따르면 삼성과 LG 등 제조사 연구원 약 450명이 ETRI에 합류해 설계와 제품화를 겹쳐 돌리는 ‘동시공학’으로 붙었고, 일정을 줄이려고 PERT 공정관리와 주간보고제까지 들여왔다. 당시 이동통신개통연구부장이던 한기철의 회고는 이랬다. “CDMA 기반 기술은 확보했지만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단말기, 통신 시스템을 제품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연구진들 모두 CDMA 상용화를 전쟁에 비유할 정도로 치열한 과정이 이어졌다.”

시제품 계보는 이렇게 이어진다. TDX-10 교환기에 이동시험시스템을 붙인 KSC-1, 1994년 4월 17일 첫 통화에 성공한 KCS-2, 그리고 실제 서비스에 쓸 수 있는 CMS-1. 다만 그 ‘첫 통화’가 언제였는지는 기록이 엇갈린다. ETRI 공식 연혁은 1994년 4월 17일을, 전경련 e뮤지엄은 같은 해 11월 18일을 세계 최초 시험통화로 든다.

단일표준이 흔들린 가을

1995년 10월 초 롯데호텔. 전자신문의 회고 연재에 따르면 경상현 정보통신부 장관은 한승수 대통령비서실장을 단둘이 만났고, 한 실장은 신세기통신에 TDMA를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개발은 막바지였다. 예외를 하나 내주면 단일표준이라는 전제가 통째로 무너진다.

같은 기록에 남은 경상현의 대답은 짧다. “그렇게 하면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CDMA 개발은 사장(死藏)되고 만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1995년 10월 정보통신부는 PCS까지 CDMA 단일표준으로 지정하며 논란을 매듭지었다. RCR Wireless에 따르면 정부는 디지털 사업자에게 국산 장비로 1996년 1월 1일까지 서비스를 시작하라고 요구했고, 신세기통신은 6개월 유예를 받았다.

두 달 남짓 뒤인 1995년 12월 20일, 김영삼 대통령은 국무위원 22명 가운데 11명을 바꾸는 개각을 했다. 정보통신부 장관 자리에는 이석채가 앉았고 경상현의 재임은 11개월 27일로 끝났다. ‘CDMA를 지키다 밀려났다’는 이야기가 뒤따랐지만 그 연결은 전자신문 회고 연재의 해석이고, 당시 MBC 뉴스데스크는 전면 개각으로만 보도했다. 같은 전자신문에 따르면 후임 이석채는 1996년 1월 중순 대통령과 독대해 CDMA 유지를 건의했고, 그것으로 논란은 끝났다.

1996년 1월 3일 오전 9시 1분

1995년 크리스마스 전후, 한국이동통신 임직원들은 서울과 인천, 부천 거리를 오가며 개통을 준비했다. 손길승 부회장과 서정욱 사장 등이 직접 한 마지막 시험통화는 끊기지 않았다. 연말 거리에서 전화기를 귀에 대고 걷던 이들이 무엇을 하는 중인지 행인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1996년 1월 3일 오전 9시 1분, 인천 남인천영업소에서 세계 최초의 CDMA 정식 가입자가 개통됐다. 첫 가입자의 소감은 이랬다. “일반 유선전화와 별 차이가 없을 만큼 감도가 깨끗하네요.” 일곱 달 전 버스에서 서정욱이 한 말과 거의 같다. 나라 예산을 몇 해나 부은 기술이 받은 최고의 칭찬이 ‘유선전화 같다’였다는 건 묘하지만, 엔지니어들이 바란 품질도 정확히 그것이었다.

시작 시점을 둘러싼 잡음도 있다. ‘1995년 8월 세계 최초로 CDMA 디지털 휴대폰 상용화에 성공했다’고 쓴 2012년 아시아경제 기사가 있지만, ETRI와 SK텔레콤의 기록도 IEEE 마일스톤 명패도 1996년 1월 3일을 가리킨다. 1995년의 시연과 1996년의 서비스 개시를 한 덩어리로 뭉갠 착오에 가깝다.

확산은 빨랐다. 1996년 4월 1일 신세기통신이 서울과 대전에서 두 번째 CDMA 서비스를 시작했고, 한국이동통신의 서비스도 4월 12일 수도권으로 넓어졌다. RCR Wireless는 신세기통신이 개통 시점에 약 24개 도시, 인구의 45%를 덮었고 그 망의 장비를 댄 곳이 삼성전자였다고 전했다. 삼성은 전화기만 만들고 있던 게 아니었다.

먼저 도착한 LG, 두 달 뒤의 삼성

여기서 흔히 알려진 이야기 하나를 정리하고 가야 한다. SCH-100은 국내 최초의 CDMA 휴대폰이 아니다. 전자신문과 서울경제, inews24가 나란히 쓰고 있듯 국내 첫 CDMA 전화기는 1996년 2월에 나온 LG정보통신 LDP-200이고, SCH-100은 두 달 뒤인 4월에 나왔다. 다만 셋 모두 한참 뒤의 회고 기사다. SCH-100을 정확히 부르자면 ‘삼성전자 최초의 CDMA 전화기’다. 도감과 기사에 반복되는 ‘국내 최초’는 검증된 사실이라기보다 오래된 습관에 가깝다.

먼저 도착한 쪽의 기록도 깔끔하지는 않다. inews24에 따르면 LDP-200은 12월 21일 정부 형식검증을 통과했고 삼성과 현대가 들어오기 전까지 약 4개월 동안 시장을 혼자 가져갔다. 연도는 빠져 있지만 앞뒤로 보면 1995년이다. LG정보통신의 CDMA 전화기 브랜드는 ‘프리웨이’였고 1997년까지 쓰이다 ‘싸이언’으로 바뀐다.

국내 매체 가운데는 이 전화기를 ‘세계 최초 CDMA 휴대폰’이라고까지 부르는 곳도 있다. 그 시절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1996년 11월 미국 PrimeCo의 CDMA 개시를 전한 RCR Wireless는 이를 ‘미국 최초의 다중시장·1900MHz CDMA’라고 못 박으면서 한국과 홍콩이 먼저 시작한 서비스를 같은 기사에 적어 두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최초’의 주인이 달라진다.

그래서 SCH-100은 무엇이었나. 1996년 4월에 나온 디지털 011 전화기다. 무게는 기록에 따라 165g과 175g으로 갈리고, 아시아경제는 이 전화기에 CDMA 관련 특허 117건이 출원됐다고 소개한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후기형 SCH-100S는 1996년 10월에 나왔고, ‘애니콜’ 로고는 초기형에는 없다가 이 후기형부터 다시 붙었다. 여기에 현대전자 HHP-200까지, 1996년 초 국내에서는 최소 세 회사가 같은 표준으로 전화기를 만들고 있었다.

삼성 애니콜 SCH-100 기본 벨소리

SCH-100 실기로 재생한 기본 벨소리. 모델명을 짚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상 기록이다.

Hyeok

INSIDE — 같은 주파수에 여러 통화를 겹쳐 넣는 법

CDMA의 원리는 한 줄로 요약된다. 같은 주파수 대역에 여러 통화를 한꺼번에 밀어 넣고 통화마다 고유한 코드를 붙여 갈라낸다. 대가도 따른다. 모두가 한 방에서 동시에 말하는 구조라 한 사람이 목소리를 조금만 키워도 나머지가 묻힌다. 그래서 전화기와 기지국은 통화 내내 서로의 목소리 크기를 다시 맞춰야 한다.

해외 기술 해설 자료는 IS-95 CDMA(초기 CDMA 규격)가 폐루프 전력제어를 초당 800회, 나중에는 1,500회까지 했다고 설명한다. 한 문장을 말하는 사이에도 전화기가 수백 번 출력을 고쳐 잡는다는 뜻이다. 여기에 가변속도 보코더가 붙는다. 말하지 않는 구간에는 보내는 비트를 줄여 그만큼 다른 통화를 더 받는다. 사람의 대화는 대부분 침묵이어서 CDMA는 그 틈을 용량으로 바꿨다. 둘 다 품질을 높이는 기능이 아니라 한 기지국에 몇 명을 더 앉히느냐의 기능이다.

삼성 CDMA 휴대폰을 분해해 기판과 금속 차폐물, 칩셋이 드러난 사진
SCH-100이 아니라 스프린트에 납품한 후속 모델 SCH-3500을 분해한 모습. 퀄컴 칩셋 둘레로 금속 차폐물이 촘촘하다.

Steve Jurvetson · Wikimedia Commons · CC BY 2.0

소프트 핸드오프는 반대로 쓰는 사람이 바로 느끼는 쪽이다. 기지국 경계에서 쓰던 연결을 끊고 새 기지국에 붙는 대신, 새 기지국이 먼저 통화를 잡은 뒤에 이전 연결을 놓는다. 끊기 전에 잇는다, make-before-break. 1995년 6월 승용차와 셔틀버스 사이의 통화가 달리는 내내 끊기지 않은 것도 이 설계로 설명된다.

격자 철탑 꼭대기에 원형 안테나 배열이 달린 CDMA 기지국
CDMA 기지국의 생김새를 보여 주는 참고 사진. 1996년 한국이 아니라 2008년 일본 KDDI의 안테나다.

Namazu-tron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이 조건을 다 맞추려면 전화기 쪽에서 간섭을 견뎌내야 했다. 몇 해 뒤 미국 스프린트에 납품한 후속 모델 SCH-3500의 기판을 열어 보면 칩셋 둘레로 금속 차폐물이 깡통처럼 덧대어 있다. 간섭을 견디는 설계가 전화기 안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했는지 보여 주는 사진이다. 서비스 개시 직전 시험은 1,000여 항목에 이르렀고, ETRI 기록에 따르면 합격기준 95%에 대해 실제 통화 성공률은 98%였다.

숫자로 남은 결과

1996년 말 국내 이동전화 가입자는 318만 명이었고 그중 CDMA 비중은 27.8%였다. SK텔레콤 기록으로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서비스 대상 인구가 약 3,502만5,000명, 당시 인구의 79%에 이르렀다.

이듬해에는 속도가 달라졌다. 1997년 중반 CDMA 가입자는 200만 명을 넘어 전체 413만5,591명의 49%를 차지했다. 이 413만과 49%를 1996년 말 숫자로 옮겨 적은 글이 흔하다. 첫해에 이미 절반을 차지했다고 쓰면 두 번째 해에야 그 비중에 이른 기술의 확산을 잘못 전하게 된다.

수출 쪽 숫자는 더 극적이다. 전자신문에 따르면 이동전화 단말기 수출액은 1996년 47만달러에서 2003년 134억달러로, CDMA 장비 수출은 1996년 230만달러에서 2000년 37억달러로 늘었다. SK텔레콤 기록은 이동전화 단말기가 반도체와 자동차에 이어 세 번째 수출 품목이 됐다고 쓴다. 눈에 띄는 것은 출발점의 47만달러다. 1996년의 한국은 사실상 휴대폰 수출국이 아니었다.

들어간 돈도 남아 있다. 전경련 e뮤지엄에 따르면 CDMA 시스템 개발 연구비는 약 1,000억원이었다. 전자신문이 전한 ETRI의 2012년 분석은 CDMA가 만들어 낸 경제적 가치를 54조3,923억원으로 잡는다.

삼성 쪽 결산은 이렇다. 삼성 뉴스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996년 9월 미국 스프린트와 첫 휴대폰 수출계약을 맺고 1997년 6월부터 PCS폰을 공급해 4년간 약 11억달러를 수출했다. CDMA 전화기 점유율은 1998년 28.5%로 세계 1위였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는 LG보다 두 달 늦었던 회사가 세계 CDMA 시장에서는 가장 앞선 셈이다.

명패 세 줄에 담기지 않은 것들

2024년 IEEE는 ‘1996년 CDMA 셀룰러 통신 시스템의 대규모 상용화’를 마일스톤으로 등재했고, 명패는 서울 SK텔레콤 본사 외벽에 붙었다. 명패에 새겨진 것은 세 가지다. 1994년 서울 장안동 테스트베드 시험, 1996년 1월 3일 서비스 개시, 1996년 말 CDMA 가입자 90만 명. 몇 해에 걸친 개발과 논란이 이 세 줄로 줄었다.

명패를 요약할 때 사람들은 흔히 ‘SK텔레콤·ETRI·삼성전자·LG전자 4개 기관’이라고 쓴다. 정작 명패 설명문은 현대전자까지 다섯 곳을 적어 두었다. 다섯 중 가장 낯설어진 이름이 목록에서 가장 먼저 빠진다. SK는 1994년 한국이동통신에 이어 2002년 신세기통신까지 인수했고 LG전자는 2021년 휴대폰 사업에서 아예 손을 뗐다. CDMA 도입을 결정한 초대 정보통신부 장관 경상현은 2016년 1월 2일 새벽, 서비스 개시 20주년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사이 산업의 크기가 달라졌다. 정보통신산업의 GDP 비중은 1996년 2.2%에서 2025년 13.1%로, 생산액은 17.8조원에서 304조원으로 늘었다. 한성대 이내찬 교수는 CDMA가 한국 ICT 부상의 출발점이었듯 앞으로 30년의 경쟁력은 AI 인프라가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름이 뒤섞이는 일은 사진 설명에서도 보인다. 2012년 전자신문이 실은 1995년 시연 사진에는 ‘SK텔레콤 부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1995년에 SK텔레콤이라는 회사는 없었다. 그때 사명은 한국이동통신이었다. 나중에 익숙해진 이름으로 지난 일을 설명하는 버릇은 ‘국내 최초 CDMA 휴대폰 SCH-100’이라는 문장에도 그대로 있다.

SH-100, 화형식, 그리고 SCH-100

한국에서 SCH-100은 이름부터 혼동을 겪는다. 전자신문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1988년 9월 내놓은 국내 최초 휴대전화 SH-100은 AMPS 아날로그 방식에 안테나까지 40cm, 무게 700~800g의 ‘벽돌폰’이었다. 알파벳 한 글자 차이지만 1996년의 SCH-100과는 세대도 방식도 다른 물건이다. 그런데도 두 이름은 지금까지 자주 섞인다.

‘애니콜’이라는 이름은 앱스토리에 따르면 1994년 11월 아날로그 SH-770에 처음 붙었고, 애니콜은 1995년에 40만 대 넘게 팔려 점유율 38%를 기록했다. SCH-100은 그 이름이 시장에서 통하기 시작한 뒤에 나온 후속이다.

파란색 필기체로 쓰인 Anycall 워드마크
삼성 애니콜의 2002년판 워드마크. SCH-100이 나온 1996년의 로고는 아니다.

Samsung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그리고 그 유명한 장면. 1995년 3월 9일 구미공장에서 삼성전자는 불량 휴대폰 등 15만 대, 약 500억원어치를 임직원 2,000여 명 앞에서 부수고 태웠다고 전해진다.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이다. 불에 들어간 것은 불량률이 12%를 넘긴 1994년형 아날로그 애니콜 SH-770이었다. CDMA와는 상관없는, 한 세대 앞의 제품이다.

그러니 화형식이 SCH-100의 품질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조심해서 읽는 편이 좋다. 삼성의 기념 콘텐츠와 언론 회고가 두 사건을 한 줄로 이어 붙이지만, 두 사건이 조직 안에서 실제로 이어졌다는 1차 근거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극적인 장면과 그 뒤의 성공을 원인과 결과로 묶는 것은 대개 나중의 편집이다.

가격표도 남아 있다. inews24에 따르면 먼저 나온 LDP-200의 출고가는 약 72만원이었다. SCH-100의 출고가는 못 박을 만한 당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점유율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앱스토리는 1996년 삼성전자의 국내 휴대폰 점유율을 47%로, SCH-100이 나온 뒤를 50%로 쓰고 천지일보는 52%까지 올랐다고 쓴다. 숫자는 달라도 LG보다 두 달 늦게 출발한 삼성이 국내 시장의 절반 안팎을 가져갔다는 흐름은 같다.

삼성 애니콜 디지털 ‘한국지형에 강하다’

‘한국지형에 강하다’를 앞세운 1990년대 애니콜 디지털 TV광고.

광고고전

  • SCH-100은 삼성전자 최초의 CDMA 전화기다. 국내 첫 CDMA 휴대폰은 1996년 2월에 나온 LG정보통신 LDP-200으로 기록된다.

  • 1993년 체신부와 상공자원부가 CDMA와 TDMA를 놓고 맞섰고, 1995년 10월 PCS까지 CDMA 단일표준으로 정리됐다.

  • ETRI는 1993년 8월 퀄컴의 도면을 기다리지 않고 하위 설계를 스스로 진행했고, 전자신문 회고에 따르면 제조사 연구원들과 동시공학으로 개발을 밀어붙였다.

  • 세계 최초의 CDMA 정식 가입자는 1996년 1월 3일 오전 9시 1분 인천 남인천영업소에서 개통됐다.

  • 2024년 IEEE 마일스톤 명패는 SK텔레콤·ETRI·삼성전자·LG전자에 현대전자까지 다섯 기관을 적고 있다.

“CDMA 상용화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였죠. 실패를 생각하지 말고 전력투구하라는 주문과 질책을 쏟아 부었던 기억이 납니다.” — 양승택, 전 ETRI 원장, 2012년 전자신문 인터뷰

SCH-100은 국내 최초도 세계 최초도 아니었다. 아무도 전국 규모로 켜본 적 없는 표준을 실제 통화로 만들어 낸 초기 전화기 몇 대 가운데 하나였다. 그 표준을 고르고 지키는 자리에는 부처 싸움과 정치의 압력까지 얽혀 있었다. 이 과정이 ‘최초’라는 수식어보다 훨씬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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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