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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ZMORY MAGAZINE

엠피맨 F10, 전시장보다 택배가 먼저였다

1998년 3월 독일 세빗에서 처음 나왔다고 알려진 기계는 그보다 5주 앞서 이미 주문을 받아 팔리고 있었다. 날짜를 하나씩 맞춰 보면 '최초'라는 말이 자료마다 얼마나 흔들리는지 드러난다.

엠피맨 F10, 전시장보다 택배가 먼저였다

1998년 2월 12일 서울에서 명함만 한 은색 플라스틱 상자가 택배로 부쳐지기 시작했다. 매장 진열도 대리점 유통도 없이 주문이 들어오면 상자를 부치는 통신판매였다. 카세트도 CD도 들어가지 않았고 안에서 돌아가는 부품도 없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면 플래시 메모리에 담긴 압축 파일이 흘러나왔다. 이름은 엠피맨 F10, 만든 곳은 새한정보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출발점을 그날로 잡은 기록은 거의 없다. 영어권 자료는 대부분 5주도 더 뒤인 1998년 3월, 독일 하노버의 세빗(CeBIT) 전시장을 시작점으로 삼는다. 하노버는 국제 무대 데뷔였고 첫 판매는 그보다 앞서 서울에서 있었다. '최초'라는 말이 붙은 문장일수록 자료끼리 어긋난다. 최초인데 인정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을 곱씹기보다 그 어긋남을 따라가는 편이 재미있다.

카세트를 만들던 그룹이 그다음을 노렸다

새한이라는 이름은 MP3 이전부터 카세트테이프와 얽혀 있었다. 위키미디어 커먼즈에는 1990년대 초 메모렉스·JVC·BASF 같은 해외 브랜드 카세트테이프가 한국에서 만들어졌음을 보여 주는 사진이 여러 장 있고 올린 사람은 그 생산 주체로 새한미디어를 지목한다. 남의 이름을 달고 카세트를 찍어 내던 그룹은 몇 해 뒤 다른 계열사를 통해 자기 이름을 붙인 물건으로 그 카세트를 밀어내려 했다.

1990년산 JVC AFII-90 Type II 카세트테이프의 정면 사진
JVC AFII-90 Type II 카세트. 케이스에 인쇄된 브랜드는 JVC뿐이다.

Retired electrician · Wikimedia Commons · CC0

카세트 다음을 먼저 상상한 쪽은 작은 벤처였다. 디지털캐스트를 세운 황정하는 1999년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세계적인 대형업체들이 내부 문제에 걸려 개발을 주저하는 사이에 혼자 앞서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니가 MD 사업과 음반업계와의 마찰을 함께 걱정하느라 머뭇거렸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킬 것이 많은 회사가 망설이는 사이 잃을 것이 적은 쪽이 먼저 움직였다.

기술은 벤처가, 판매는 새한정보시스템이

엠피맨 F10은 새한정보시스템 이름으로 나왔지만 원천기술은 다른 회사가 만들었다. 디지털캐스트는 1996년 11월 황정하가 자본금 4억원으로 세운 회사다. 황정하는 뒤에 "처음에는 MP3 플레이어를 개발하는데 대해 모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MP3가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믿고 앞만 보고 달렸지요"라고 회고했다. 회의적이었다는 말은 대개 그런 걸 누가 사겠느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오래 잘못 알려진 회사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F10을 만들어 판 곳은 새한미디어도 'Saehan Electronics'도 아니다. 1998년 2월 당시 기사가 밝힌 이름은 새한그룹의 시스템통합(SI) 계열사 새한정보시스템㈜이고 대표는 문광수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새한과 새한미디어가 함께 돈을 대 세운 회사이고 뒤에 TAK정보시스템㈜이 됐다. 영국 박물관 카탈로그나 국내 기사에 다른 이름으로 적힌 것은 계열사끼리 이름이 섞인 탓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바로잡을 이름은 문광수다. 특허에 공동발명자로 올라 있다는 이유로 그는 오래 엔지니어로 소개돼 왔지만 실제로는 새한정보시스템의 대표이사 본인이었다. 삼성생명과 삼성SDS를 거쳐 대표가 됐고 1997년부터 'MP맨'의 상품화를 직접 끌고 갔으며 2000년 5월에는 갈라져 나온 법인 엠피맨닷컴의 대표이사가 됐다. 사장이 자기 회사 제품의 특허에 발명자로 이름을 올린 조직이었다.

1997년 11월 24일, 문광수와 황정하의 이름으로 '엠피이지 방식을 이용한 휴대용 음향 재생장치 및 방법'이라는 특허가 출원된다. 한국 특허 KR100287366B1이다. 등록은 한참 뒤인 2001년 4월 16일이었지만 서류의 날짜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이 먼저였다. 개발의 고비를 어떻게 넘겼는지는 기록마다 엇갈린다. 오마이뉴스 기획기사는 독일 미크로나스의 DSP 칩, 그러니까 소리를 다루는 전용 칩을 들여와 크기와 배터리와 음질을 한꺼번에 풀었다고 쓴다.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와 디지털캐스트의 초기 시제품이 모두 ESS 테크놀로지의 같은 디코더 칩을 썼다는 기록과는 정면으로 부딪친다.

명함만 한 상자 안에 든 것

명함 크기에 무게는 65그램, 두께는 16.5밀리미터였다.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소장 기록은 플레이어와 충전독 두 점, 은색 플라스틱, 11.3×11×3.8센티미터로 적는다. 안에 든 니켈수소 충전지로 완충하면 아홉 시간 재생됐다. 용량은 자료마다 다른데 당시 기사는 16MB에서 64MB까지라고 썼고 영문 위키백과는 16·32·64·128MB 네 종류를 든다.

mpman 워드마크가 찍힌 노란색·금색 휴대용 플레이어 본체의 사선 정면 사진
F10이 아니라 같은 제품군의 후속 모델 F60이다. 전면에 'HI-QUALITY DIGITAL SOUND'와 mpman 워드마크가 찍혀 있다.

Michele M. F. from Milano, Italy · Wikimedia Commons · CC BY-SA 2.0

메모리를 늘릴 슬롯이 없다는 점은 생각보다 큰 제약이었다. 뒤에 나온 F20은 64MB에 3.3V 스마트미디어 카드 슬롯을 달고 AA 배터리 한 개로 돌아갔다. F10의 내장 충전지와 메모리를 늘릴 수 없는 구조를 둘 다 뒤집은 설계다.

곡을 넣으려면 PC의 패러렐 포트에 물리는 독을 거쳐야 했다. 프린터를 꽂던 그 단자다. USB가 흔해지기 전에는 달리 길이 없었고 파일을 옮기는 절차는 번거로웠다.

돌아가는 부품이 없으니 뛰어도 소리가 튀지 않았다. 65그램은 주머니에 넣고도 잊고 다닐 만했고 아홉 시간이라는 재생 시간도 그 시절 기준으로 나쁘지 않았다. 단점도 뚜렷했다. 담을 수 있는 곡이 적은데 늘릴 방법이 없었고 곡을 채워 넣는 데 시간이 걸렸으며 값도 비쌌다. 갖고 싶은 마음에 비해 쓰기는 이만큼 불편한 물건도 드물다.

World's First portable MP3 player - the MPMan!

같은 제품군인 F20 실물로 그 시절의 파일 전송과 재생 과정을 처음부터 되짚은 26분짜리 리뷰.

Modern Classic

2월 4일자 연합뉴스가 예고한 첫 판매일

2월 12일이라는 날짜의 근거는 1998년 2월 4일 연합뉴스 기사다. 새한정보시스템이 MP3 플레이어 'MP맨'을 내놓는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2월 12일부터 통신판매·택배로 판다고 예고했다. 지면에 남은 이 예고가 첫 판매 시점을 짚는 가장 이른 기록이다.

같은 기사에서 회사 관계자는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mpman.com)를 통해 신제품 개발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각지에서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으며 미국, 일본등 외국업체와도 수출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노버 전시장 문이 열리기 5주도 더 전에 이 회사는 이미 주문을 받고 수출을 협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F10은 1998년 3월 CeBIT에서 처음 세상에 나왔다'는 문장은 절반만 맞다. 3월 하노버는 국제 무대 데뷔였고 영어권 자료가 서로 들어맞는 것도 딱 거기까지다. 흔히 알려진 이야기는 두 사건을 하나로 합치면서 생긴 혼동에 가까운데 둘을 나눠 적으면 충돌은 사라진다. 이후 확산은 빨랐다.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1998년 5월 2일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판매가 시작됐고 32MB와 64MB 모델 값은 각각 39,800엔과 59,800엔이었으며 같은 달 미국에서도 살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팔렸다

미국에 도착한 기기에는 다른 이름이 붙었다. 영어권 자료가 지금도 이 제품을 'Eiger Labs MPMan F10'이라는 표제로 다루는 까닭이다. 1998년 4월 5일 MTV 뉴스는 미국 판매 조건을 32MB 299달러, 64MB 459달러로 적었고 배터리를 뺀 무게 65그램에 완충하면 9시간 재생, PC 전용이라고 밝혔다. 미국 안에서 살 수 있는 곳으로는 마이클 로버트슨의 Z컴퍼니, 곧 mp3.com 한 곳을 꼽았다.

파란 원 안의 흰 'mp' 글자와 그 옆의 'man' 글자로 이루어진 워드마크
mpman.com이 쓰던 워드마크.

mpman.com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같은 MTV 기사는 새한을 '한국 전자업계 거인 삼성에서 갈라져 나온 회사'로 소개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새한그룹(1973~2000)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가 세운 방계 기업집단이었다. 삼성전자와는 다른 회사지만 삼성이라는 이름에서 갈라져 나온 것은 맞다. 낯선 회사를 가장 짧게 설명하려고 고른 이 한 줄이 기기의 미국 내 이미지에 오래 남았다.

1998년 9월 19일자 빌보드 1면과 102쪽에는 더그 리스가 쓴 「Industry Wary As Wave Of Portable MP3 Players Looms」가 실렸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는 새한 MPMan과 소매 유통망을 그대로 쓰는 다이아몬드 리오를 나란히 놓은 기사였다. 같은 물건을 파는 두 방법이 처음 견주어진 셈인데 몇 달 안에 성적의 차이가 드러났다. 매대를 이미 잡아 둔 쪽이 유리했다.

정확히 얼마나 팔렸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추정치는 '2만대 미만'부터 '수천 대', '총 300대', '겨우 몇백 대'까지 엇갈리고 어느 쪽도 판매 통계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숫자는 못 박을 수 없어도 장사가 되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판매는 부진했어도 논란은 컸다. 1998년 4월 5일자 MTV 뉴스에서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의 반불법복제 담당 부책임자(오래 '부사장'으로 옮겨져 왔지만 원문 직함은 associate director다) 프랭크 크레이턴은 이렇게 말했다. "The MP3 player has no function other than playing material that was stolen from record companies." 음반사에서 훔친 자료를 재생하는 것 말고는 아무 기능이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몇 주 뒤 그는 같은 기기를 두고 "a unique device. It's something that we haven't seen on the market before."라고 말한다. 시장에서 본 적 없는 독특한 기기라는 뜻이다. 같은 기사 안에서 말을 뒤집었다고 흔히 전해지지만 두 발언은 MTV(4월)와 《바이브》 1998년 10월호에 따로 실린 별개의 순간이다.

'최초'라는 말은 어디까지 맞나

압축한 음악을 들고 다닌다는 발상은 F10보다 앞서 있었다. 1996년 9월 25일 미국 오디오하이웨이가 '리슨 업(Listen Up)'이라는 플레이어를 발표했다고 전해진다. 299달러에 AAA 배터리 두 개로 최대 한 시간 재생, PC와는 패러렐 포트로 연결하는 물건으로 발표됐다.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리슨 업은 1997년 CES에서 혁신상을, 이듬해 1월 30일 인터넷 쇼케이스 컨퍼런스에서 관객상을 받았지만 실제 양산과 판매로는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제품을 발표한 일과 상을 받은 일, 실제로 판 일은 서로 다르다. 1996년 9월에 먼저 나온 발표가 있고 그 제품이 양산까지 갔는지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상 엠피맨을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정확한 표현은 '처음으로 실제 판매된 휴대용 MP3 플레이어' 쪽이다.

영어판 위키백과도 이 문제를 두 줄로 나눠 적는다. 'Eiger Labs MPMan F10'은 가장 먼저 나온 휴대용 MP3 플레이어(the first portable MP3 player), 다이아몬드 리오 PMP300은 처음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제품(the first commercially successful one)이다.

경쟁자 쪽 날짜도 어긋난다. 다이아몬드 리오 PMP300이 '1998년 9월 15일 출시'됐다는 설명에는 오류가 두 군데 있다. 같은 보도자료도 웹에 저장된 시점에 따라 2003년본은 9월 14일, 2013년본은 9월 15일로 갈린다. 더 중요하게는 그 날짜가 출시일이 아니라 발표와 예약판매를 시작한 날이다. 보도자료와 1998년 9월 17일자 와이어드 기사 모두 매장 출하를 10월 예정으로 적는다.

다이아몬드 리오 PMP300 본체의 정면과 측면, 그리고 25핀 커넥터가 달린 별도 독의 사진
경쟁 기기인 다이아몬드 리오 PMP300 본체와 25핀 커넥터가 달린 별도 독.

John Fader at en.wikipedia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리오는 199달러에 32MB 플래시롬, CD 음질로 약 32분과 일반 음질로 약 64분, AA 건전지 한 개로 약 12시간, 그리고 스마트미디어 확장 슬롯을 갖췄다. F10의 미국 판매가보다 100달러 싸고 메모리를 늘릴 수 있었고 건전지도 갈아 끼울 수 있었다. 일곱 달 늦게 나온 만큼 값과 편의가 나아진 셈인데, 그 차이만으로 리오가 훨씬 널리 기억되는 까닭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리오가 더 널리 기억되는 데에는 소송이 한몫했다. 1998년 10월 초 RIAA는 캘리포니아 중부연방지법에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를 상대로 가정녹음법 위반 소송을 내고 판매를 당장 막아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소를 낸 날짜조차 자료에 따라 8일과 9일로 갈린다. 오드리 콜린스 판사는 10월 16일 만들지도 팔지도 못하게 하는 임시 명령을 내렸다가 10월 26일 풀었다. 청문에서 다이아몬드 마케팅 부사장 켄 워트는 리오를 '음악이 체크인은 되지만 체크아웃은 안 되는 바퀴벌레 모텔'에 비유했다.

이듬해 제9순회항소법원은 리오가 가정녹음법이 말하는 '디지털 오디오 녹음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옮기는 것은 이 법이 정한 '직접' 복제도 '전송에서 받은' 복제도 아니라는 논리였다. PC 하드디스크에서 리오로 음악을 옮기는 비상업적 복제는 공정 이용이라는 취지의 말도 함께 남았다. 소송은 리오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그 이름을 키웠다. 정작 판매량은 '10만대 이상', '20만대', '40만대 이상'으로 엇갈리고 어느 기간의 어느 제품을 가리키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Sabías que el primer reproductor de MP3, fue lanzado en 1997?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1997년'이라고 소개하는 23초짜리 스페인어 트리비아 클립. 최초가 언제인지조차 이렇게 제각각이다.

Qubitalk

기억에 남은 이름은 따로 있다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를 세운 사람은 재미교포 사업가 이종문이다. 1982년 Diamond Computer Systems로 시작해 IBM PC용 애플 에뮬레이션 카드 TrackSTAR를 팔았고 거기서 그래픽 가속기로 방향을 틀며 회사를 키웠다. 1928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세대 기업가로 전해진다.

안경을 쓰고 감색 재킷에 푸른 줄무늬 셔츠를 입은 노년 남성의 상반신 초상 사진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 명예회장 이종문.

bjjung · Wikimedia Commons · CC BY-SA 4.0

이종문이 등장하면 작은 벤처의 기술을 한국계 창업자의 회사가 사 갔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1998~99년 다이아몬드의 CEO 이종문이 디지털캐스트와의 계약을 주선했다'는 문장이 오래 돌아다녔다. 문서에 적힌 내용은 다르다. 그 시기 다이아몬드의 CEO로 확인되는 인물은 윌리엄 J. 슈뢰더이고 재임 기간은 1994년부터 1999년까지다. 1998년에 이종문이 무슨 직함이었는지는 기록마다 다르다. 그가 이끈 벤처캐피털의 소개문은 1996년 사임을 적고 공식 이력서는 다이아몬드 경력을 1982~1995년으로, KAIST 소개문은 1982~1999년으로 적어 서로 어긋난다.

그럼 서울의 그 계약은 누가 주선했나. 2018년 사운드앤비전이 정리한 참여자 회고에 따르면 1998년 봄 서울의 한 호텔방에서 협업 계약을 실제로 성사시킨 사람은 다이아몬드의 CTO 허형회였다. 한국 대학 동문 인맥으로 디지털캐스트를 찾아냈다고 한다. 참여자들의 회고 어디에도, 이종문 본인의 공식 이력서 어디에도 그가 이 계약을 주선했다는 기록은 없다. 물론 기록이 없다는 것만으로 관여가 없었다고 증명되지는 않는다.

상 이야기도 연도를 고쳐야 한다. 'PC매거진이 1999년에 이종문을 올해의 혁신가로 뽑았다'는 문장이다. 본인의 공식 이력서와 소개문은 2007년 9월호 PC매거진이 그를 '1999년의 혁신가'로 이름 붙였다고 적는다. 여러 해 뒤에 돌아보며 붙인 타이틀인 셈이다. 게다가 이력서에 적힌 선정 사유는 'MP3 칩을 업계에 들여오고 MP3 기반 제품을 개발했다'는 것인데 거기에 Rio도 PMP300도 없다.

정작 다이아몬드 내부의 기억은 훨씬 소박하다. 오디오 제품 매니저 토드 무어는 휴대용 MP3 플레이어 구상을 '루니 튠즈(Loony Tunes)'라는 내부 코드명으로 처음 올렸다. 임원 켄 컴스톡은 그때 회사가 "didn't even know how to spell MP3", 그러니까 MP3의 철자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렇게 출발한 회사의 제품이 MP3 플레이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팔리지 않은 제품이 남긴 특허

제품이 팔리지 않은 뒤에도 특허 서류는 마지막 자산으로 남았다. 2001년 등록된 KR100287366B1에서 특허를 넘겨받은 쪽, 곧 양수인 목록에는 윤순조와 ㈜엠피맨닷컴, 황정하 옆에 ㈜리오포트가 함께 올라 있다. 리오포트는 디지털캐스트가 1999년 4월에 바꾼 이름이고 2000년 초 다이아몬드에서 갈라져 나왔다. 특허 지분이 다이아몬드 쪽으로 넘어갔다는 뜻이다. 정작 다이아몬드가 디지털캐스트의 지분과 특허를 언제 얼마에 가져갔는지는 지금도 흐릿하다. 오마이뉴스 기획기사는 1998년 말 270만달러에 기술투자 2000만달러를 더한 조건이라고 적지만 그렇게 쓴 자료는 그 하나뿐이고 다른 기록은 1998년 7월이나 9월 전후를 짚는다.

국내에서 벌어진 일은 흔히 알려진 것과 순서가 거꾸로다. 우선 '엠피맨의 국내 특허가 무효가 됐다'는 말부터 틀렸다. 엠피맨닷컴이 가진 국내 특허는 2건이었고 2002년 가을 특허심판원에서 무효로 처리된 것은 보이스레코딩 같은 여러 기능을 다루는 2호 특허다. 핵심인 1호 특허는 이때 살아남았다.

1호 특허를 정면으로 다툰 해는 2004년이다. 레인콤을 포함한 국내 MP3 제조사 10곳이 특허를 없애 달라는 무효심판을 냈지만 특허심판원은 2004년 5월 11일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리인이었던 정직과특허 이상찬 변리사는 승소 직후 "최초 특허권 청구범위의 대부분인 시스템장치와 방법에 대해 폭넓게 특허로 인정받아 이 특허를 벗어나서는 MP3 플레이어를 생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판을 낸 10곳 가운데 레인콤은 같은 시점에 엠피맨닷컴의 매각우선협상대상자, 그러니까 그 회사를 사겠다고 가장 먼저 협상할 권리를 얻은 곳이기도 했다. 특허는 깨려 하면서 회사는 사려 한 셈이다.

'특허 승소로 로열티를 거둬 회사가 컸다'는 이야기도 성립하지 않는다. 2003년 7월에 부도가 났고 법정관리 상태로 2004년 5월 심판에서 이겼으며 2004년 7월 레인콤에 넘어갔다. 회사는 이긴 다음 스스로 정정심판을 내 특허가 미치는 범위를 좁히는 쪽을 택했다. 구글 특허가 지금 보여 주는 상태도 '무효'가 아니라 '만료 — 수수료 미납'이다. 연차료를 못 내서 만료된 것이다.

그사이 특허는 해외로 팔려 나갔다.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레인콤은 2004년 40억원에 엠피맨닷컴을 사들이며 특허권까지 함께 가져갔고 경영난이 깊어지자 2006년 초 미국 MP3 칩세트 업체 시그마텔에 되팔았다. 매각 계약에는 한국포터블오디오기기협회에 든 중소기업 10여곳에는 특허권을 휘두르지 못한다는 조항이 들어갔지만 삼성전자나 LG전자처럼 협회 밖 대기업은 그 보호를 받지 못했다. 시그마텔은 2006년 1월 3일 보도자료로 '문-황 특허(Moon-Hwang patents)'군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두 발명자의 성을 붙인 이 별칭이 쓰인 것으로 확인되는 가장 이른 때는 2006년이다. 1998년에는 아무도 이 특허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그다음은 익숙한 경로다. 시그마텔은 미국 특허 US7065417B2로 돈을 더 벌 수 있겠다고 보고 이를 댈러스의 특허관리전문회사 텍사스MP3테크놀로지스, 그러니까 물건은 만들지 않고 특허를 사들여 사용료를 받거나 소송을 거는 회사에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사는 2007년 2월 16일 텍사스 동부연방지방법원 마셜 지원에 애플·삼성전자·샌디스크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냈다. 소는 뒤에 취하됐고 2012년 보도 시점 기준으로 국내 기업들은 합의로 특허료를 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발주한 정책연구는 2005~2010년 주요국에서 팔린 MP3 재생 가능 기기를 약 13억대로 잡고 대당 기술료 2달러를 가정해 약 27억달러, 원화로 약 3조1500억원의 로열티를 놓쳤다고 추정했다.

한국은 이 기계를 어떻게 기억하나

국내에서 F10은 비싼 물건이었다. 용량별 소매가는 24만6천원에서 51만9천원까지였고 1998년의 24만6천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다. 한 자료에 따르면 그해 8월 30일자 동아일보 지면이 새한정보시스템의 'MP맨'을 소개했다고 한다. 국내 언론도 이 제품을 알고는 있었다.

다만 당시 국내 보도는 이 기술의 성적과 다른 회사의 성적을 자주 뒤섞었다. 1999년 2월 한국경제에 실린 황정하 인터뷰에는 '판매액 200만달러에 회사 매각', '지난해 11월 이후 약 20만대 판매', '시장 점유율 약 90%' 같은 숫자가 나온다. 문맥을 따라가 보면 디지털캐스트의 원천기술 성적이라기보다 리오 완제품의 성적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기술이 곧 리오의 성공이라는 식으로 뒤섞은 흔적이 남았고 오늘 우리가 아는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뒤섞인 이야기와 달리 업계의 계보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거원시스템, 곧 코원은 2002년 7월 29일 엠피맨닷컴과 통상실시권 계약, 그러니까 특허를 쓰는 대신 로열티를 내는 계약을 맺고 대당 25센트씩 5년간 내기로 했다. 국내 MP3 업계가 국내 특허에 로열티를 낸 드문 사례다. 이 특허는 2004년 7월 레인콤이 사들였고 국내 MP3 산업은 그 뒤 레인콤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정작 물건을 만든 쪽은 그때까지 버티지 못했다. MP3 사업부가 엠피맨닷컴으로 갈라져 나온 것이 2000년 2월, 문광수가 그 법인의 대표이사로 뽑힌 것이 2000년 5월이다. 같은 달 새한그룹에서는 경영난으로 오너 일가가 물러나고 외부 전문경영인 박종률 전 SK 고문이 신임 회장으로 앉았다.

그리고 24년이 지난 2022년,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이 MPMan F-10을 소장품으로 받아들였다. 소장번호 FE.200-2022, 동아시아 컬렉션. 'Hallyu! The Korean Wave' 전시와 연계해 모았고 지금은 수장고에 들어가 있다. 카탈로그에 적힌 제조사 이름은 'Saehan Electronics'다. 박물관 기록에서도 회사 이름은 끝내 바로잡히지 않았다.

  • 'CeBIT에서 처음 나왔다'는 말은 틀렸다. 1998년 2월 12일부터 통신판매로 먼저 팔렸고 3월 하노버는 국제 무대 데뷔였다.

  • 만든 곳은 새한미디어가 아니라 새한그룹의 SI 계열사 새한정보시스템이다. 특허 공동발명자 문광수는 그 회사의 대표이사 본인이었다.

  • 정확히는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가 아니라 '처음으로 실제 판매된 휴대용 MP3 플레이어'다. 1996년 리슨 업 발표가 먼저 있었다.

  • 리오 PMP300의 1998년 9월 날짜는 출시일이 아니라 발표와 예약판매를 시작한 날이고 매장 출하는 10월 예정이었다.

  • 핵심 특허는 무효가 되지 않았다. 무효로 처리된 것은 2호 특허였고 1호는 2004년 5월 심판에서 살아남은 뒤 수수료 미납으로 만료됐다.

"팔았던 특허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업계의 목을 죄고 있으니 사람으로 치면 참 기구한 팔자입니다." — 김경태, 엠피맨닷컴 前 영업이사, 2007년 4월 전자신문 인터뷰

엠피맨 F10을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래도 휴대용 MP3 플레이어 가운데 실제 판매가 가장 먼저 시작된 기계라는 사실은 기록이 뒷받침한다. 이 기계가 잊힌 까닭은 기술보다 다른 데 있었다. 물건을 파는 길과 돈, 그리고 특허가 주인을 바꿔 간 과정이 더 크게 작용했다.

  • 엠피맨 F10
  • 새한정보시스템
  • 디지털캐스트
  • 리오 PMP300
  • 문-황 특허

참고 자료